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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회복 나선 「중남미 인디오」/신대륙 발견 5백주년 맞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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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선거불참·납세거부 운동 등 조직적 대응/내년 「원주민의 해」 인권단체 동참 움직임
중남미 각국에 흩어져 있는 인디오들간에 권리회복운동이 본격화되고 있다. 5년여전부터 서서히 일기 시작한 이같은 움직임은 금년이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5백년이 되는 해인데다 지난 5월 브라질에서 열렸던 환경정상회담을 통해 원주민들의 목소리가 세계에 전해지면서 더욱 활발해졌다. 특히 과테말라의 인디오 권익보호운동가인 리고베르타 멘추가 금년도 강력한 노벨평화상 후보로 오른데 이어 내년이 유엔이 정한 「원주민의 해」여서 앞으로는 세계인권단체들도 인디오들의 권익보호운동에 동참할 것으로 보인다.
멕시코의 시에라 마드레에서 아르헨티나의 파타고니아에까지 산재해 있는 인디오들의 인구는 20여종족 3천여만명. 이들의 선조들은 백인들이 이 지역으로 들어오기 전만 해도 마야·잉카·아즈텍 등 찬란한 고대문명을 누리고 있었다.
따라서 남미 인디오들의 노력은 신대륙발견 5백년을 신천지개척의 축제로 받아들이는 비인디오계 주민들과는 달리 백인 정복자들에게 당한 뼈아픈 과거를 되새기고 고유의 문화·전통을 살리려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남미인디오들은 고유의 문화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생활조건 개선,재산권보호,교육기회,직업보장 등에 대한 동등한 권리확보가 선행되어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이들이 비인디오계주민을 대하는 태도에서는 『북미 인디오들의 경우,실상이야 어떻든 주민들간에 인디오들에게 저지른 만행을 부끄러워하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데 반해 중남미에서는 그런 공감은 커녕 인디오에 대한 차별을 심화하지 않느냐』는 반감을 쉽게 읽을 수 있다.
현재 중남미 인디오들은 대부분이 정부의 외면속에 보호구역이나 정글·산악지대에서 철저히 고립된채 열악한 환경속에서 살고 있다. 인디오 종족중에서 그래도 생활이 낫다고 하는 마푸치족의 경우에도 1인당 주민평균소득이 연 5백달러에 그치고 있다.
반면 미국정부의 인디언관련 예산은 외형적으로는 연 35억달러에 달한다. 이를 인디오 1인당으로 나누면 3천5백달러 정도. 이들 미국 인디언의 평균 가계 소득은 연 2만달러선. 캐나다 인디언들의 경우는 이보다 더 높다.
현재 가장 조직적인 인디오 권리회복 운동을 벌이는 종족은 칠레와 아르헨티나에 산재해 있는 마푸치족. 이 종족은 최근 인디오 국가건설을 내걸고 칠레 정부를 상대로 납세거부 및 선거불참운동을 펼치다가 지도자가 투옥되는 불행을 겪기도 했다. 금년도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른 과테말라의 멘추 역시 군사정권에 부모와 형제를 잃은 뼈아픈 과거를 안고 있다.
물론 인디오들에게 어느 정도 지위를 인정하는 나라도 있다. 브라질과 베네수엘라의 경우 최근 야노마미인디오들을 위해 별도의 대규모 보호구역을 설정했으며 인디오 인구비율이 비교적 높은 볼리비아와 콜롬비아에서는 의회에 진출한 인디오도 있다. 그러나 이들 나라에서도 「인디오는 문명의 혜택을 받을 가치가 없는 종족」이라는 인식만은 여전하다.
인디오문제 전문가들은 인디오들의 권리회복운동과 관련,『과거 인디오들이 권익을 주장했다가 관철되지 않을 때마다 몇배의 타격을 받았다』면서 실질적인 효과에 의문을 제시했다. 이들은 아마존 유역의 일부 인디오 종족에 자살이 많고,페루 고산지대의 인디오 종족에 코카인 중독자가 많은 것도 권익주장 운동의 실패에 따른 환멸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해를 맞아 뼈아른 반성에서 활기를 띠고 있는 인디오들의 권리회복운동이 지금까지와는 달리 공평한 교육기회제공,주택보급 등 실생활개선으로 이어질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정명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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