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탈당」 여파/대선후보 “무주공산” TK쟁탈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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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호용의원 영입 「반YS」 완화시도 민자당/노­김 총재 갈등부각… 자존심에 호소 민주·국민
30년집권 아성인 대구·경북 유권자의 향배를 놓고 민자·민주·국민당의 경쟁이 치열하다. 민자당은 이 지역을 붙잡는 것이 승리의 관권이라고 보고 있고 민주당은 YS에 가는 TK표를 깨기만 하면 만사형통이란 생각이다.
○…민자당은 노태우대통령이 민자당을 탈당하자 대구·경북지역의 반응을 주의깊게 지켜보고 있다. 노 대통령의 탈당은 이 지역주민의 미묘한 정서를 자극,김영삼총재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강화시킬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김 총재측이 박철언의원의 탈당방지에 여러 채널을 동원하는 것이나 무소속의 정호용의원 입당에 집착하는 이유도 가급적 TK정서에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이 지역 유권자수는 지난 3·24총선 기준으로 대구 1백47만,경북 1백92만 등 3백40만명 가량이다. 전체 유권자 2천9백만명의 11.7%이며 호남의 3백57만명에 육박한다.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이 지역의 부동표는 50% 안팎으로 다른 지역보다 훨씬 높고 지난 총선에서 국민당이 예상외의 돌풍을 일으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TK대통령 후보가 없고 현재와 같은 정당구조가 유지될 때 이 지역 유권자들은 김대중민주당대표에게는 표를 찍기 어렵고 결국 김영삼총재와 정주영국민당대표,박찬종신정당대표에게 표를 갈라주지 않겠느냐는 것이 보편적인 분석이었다.
때문에 민자당에서는 노 대통령의 탈당선언 이전까지만 해도 참고 기다리면 찍을 곳을 찾지 못한 부동표가 막바지에는 김 총재쪽으로 쏠릴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낙관해왔다.
실제로 대구·경북지역 민자당의원들은 이런 낙관적 판단하에 그렇게 적극적으로 뛰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예기치 않은 민자당 탈당은 낙관론을 위태롭게 했다.
노 대통령은 이 지역에서도 별로 인기가 없다. 박정희·전두환대통령에 대한 호의에 비하면 노 대통령에 대한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렇지만 김 총재의 밀어붙이기식 강박으로 노 대통령이 탈당한데 대해서는 감정이 다르다.
대구·경북지역 특유의 「오기」또는 자존심이 상한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YS에겐 바람직스럽지 않은 사태진전이다. 이른바 TK들은 다른 지역의 비판여론 때문에 입을 다물고 있지만 대체로 내심 30년 집권이 가져다준 약간의 우월감 또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때문에 대구·경북지역의 정서엔 항상 이곳 출신 정치인을 타도대상으로 투쟁해온 김영삼총재가 그렇게 호의를 갖고 볼만한 존재는 아니다. 넓게 봐 같은 경상도가 아니냐는 점에서 김대중대표 보다는 저항감을 덜 느낄지 모르나 다른 요인을 뛰어넘어 YS에게 지역감정을 느낄만한 정도는 못된다.
이런 이유로 김 총재는 박철의원의 탈당을 한사코 만류하고 있고 무소속의 정호용의원을 끌어들이는데 주력하고 있다.
정 의원이 들어올 경우 이 지역 정서상 부동표를 YS로 돌아서게 하는데 적지않은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김 총재는 내심 최고위원자리라도 주고 끌어안고 싶지만 당내에 정 의원과 라이벌 관계에 있는 TK들이 많아 쉽게 결론을 못내리고 있다.
김 총재측은 대구·경북지역에서 최저 50%,최고 65% 득표를 목표로 하고 있다. 여기에서 김대중대표에게 1백50만표 이상 격차를 내지 않을 경우 당선을 낙관할 수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김 총재가 노 대통령과의 신뢰재구축에 나선 것이나 김윤환·김용태·금진호·박세직·김복동의원 등 이 지역 실세들의 결집을 촉구하는 것도 이때문이다.
○…김대중민주당대표는 노 대통령과 YS의 관계를 복원불능상태로 빠뜨려 TK의 YS이탈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김 대표는 자신을 위험시하던 TK보수세력사이에 『우리가 집권하는 것도 아닌데 YS나 DJ중 누가 집권해도 별 문제없지 않느냐』는 여론조성을 겨냥하고 있다. 그렇게만 되면 YS의 준표밭인 대구·경북지역의 표를 흔들어 놓을 수 있고 여기에 정주영국민당대표가 강원도표를 휩쓸어 주면 DJ로서는 최상의 구도가 되기 때문이다.
김대중대표는 최근 두달 사이 이 지역을 세번이나 다녀왔다. 지난 24일 경주 김유신장군 묘역행사에 참석했다가 대구를 방문한 자리에서는 『YS가 못살게 괴롭혀서 노 대통령이 뛰쳐나간 것』이라고 했고 『내가 집권하면 호남보다 영남을 후하게 대접하겠다』고 공약했다.
김 대표는 경북출신으로 부산에서 정치를 해온 이기택대표를 앞세워 분위기를 잡은뒤 『당선되면 이 대표를 당수로 적극 밀겠다』고 약속했다.
김 대표의 대구·경북지역 공략의 캐치프레이즈는 『훼손된 이 지역 자존심을 DJ가 회복시켜준다』는 것이다. 다만 총선때부터 김·이 대표는 『대구·경북이 30년 집권했지만 일부 기득권층만 혜택을 누렸지 주민들에게 남은 것은 TK라는 오명』이라는 점을 강조해왔다. 『6대도시중 부도율이 가장 높고 낙후된 곳이 대구』라는 것도 단골메뉴중 하나다.
김 대표는 한걸은 더 나아가 『집권하면 대구의 섬유·기계 공업에 획기적 투자를 하겠다』는 공약까지 했다.
물론 김 대표는 이 지역의 표가 YS에게 안가더라도 자신에게 오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지역 표의 동요는 자신에게 반사이익을 던져주며 따라서 정호용의원 등의 신당 움직임도 DJ에게 불리하지 않게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노 대통령과 YS의 협조관계를 완전히 끊을 수만 있다면 DJ로서는 더이상 바랄 것이 없다.
국민당의 정주영대표와 김동길최고위원이 직접 나서 정호용·박철언의원과 접촉을 강화하는 것도 노·YS관계의 취약점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현대그룹측은 이 지역 주민들의 울산 산업시찰에 특히 열을 올리고 있어 민자당의 촉각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정 대표는 수시로 『박 의원은 YS가 당선되면 절대 민자당에 있지 못한다』고 부채질하고 있으며 김 최고위원도 정 의원을 수차례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3당이 대구·경북지역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지역감정을 둘러싼 이전투구를 벌일수록 TK 민초들의 심정은 더욱 착잡해질지 모른다.<김두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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