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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희망을 읽어주는 아줌마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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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선생님, 이것 좀 더 드세요.""선생님, 이 카드 집에 가서 꼭 읽어보세요."

지난 17일 '독서교실 종강파티'가 한창인 서울 구로구 천왕동 연세사회복지관. 매주 수요일 오후 2시는 한우리독서운동본부 소속 독서지도사들이 이곳 보육원 아이들에게 독서교육을 하는 시간이다.

한 학기 수업을 마무리짓는 이날에는 교사들이 집에서 마련해온 김밥.떡 등을 함께 먹으며 새해 소망을 담은 카드와 소원목걸이를 만드는 종강파티가 열렸다. 남은 떡볶이를 서로 먹으라며 권하는 모습이나, 만든 작품들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웃는 모습이 천상 엄마와 아이들이다.

초등학교 3학년인 승희는 "책을 읽고 선생님과 함께 신문 만드는 과정이 제일 재미있었다"며 한 학기를 회고한다.

7년째 이곳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정효은(42.부천시 원미구 상동)씨는 "책 속에 길이 있다잖아요. 우리 아이들이 책 속에서 희망과 꿈을 찾는 데 작은 도움이 됐으면 하네요"라며 수줍게 말문을 열었다.

봉사에 나선 독서지도사들은 부모의 사망.이혼 등으로 보육원에 맡겨진 아이들에게 다달이 수강료를 내는 학생들과 똑같은 수업을 한다. 한달에 두권씩 책을 읽은 뒤 토론을 하고 독후감상화도 그려보고 주인공에게 편지도 써보는 등 다양한 독후활동을 펼친다.

"딱 1년만 봉사할 생각으로 시작했다"는 백혜정(42.안양시 동안구 평촌동)씨는 "닫힌 마음을 터놓는 데 책만한 게 있겠느냐"고 말한다. '봉사'라는 생각으로 다가갔지만 아이들의 첫 반응은 데면데면했다. 부모에게서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다른 사람과 쉽게 친해지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 '선배'봉사자들의 귀띔이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함께 상상하고 교훈을 찾아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마음도 주고받게 됐다. "이제 쫓겨나기 전에는 그만두지 않겠다"는 게 4년째 이곳을 찾고 있는 백씨의 각오다.

한우리독서운동본부는 독서지도사를 양성하고 독서문화운동을 펼치는 단체. 이곳에서 6개월 동안 교육을 마치고 자격증을 딴 독서지도사 중 희망자들로 구성된 봉사단은 1996년 10여명으로 시작된 작은 동아리였다. 참가자는 점점 늘어 현재 1백20여명이 20개 보육원.소년원 등을 찾아다니며 매주 독서지도를 하고 있다.

한우리독서봉사단의 박선이 사무국장은 "독서지도사들이 대개 3~5명씩 팀을 꾸려 학생 1명당 6만~7만원씩 수업료를 받는 것을 감안하면 봉사단원들은 매달 수십만원의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고 봉사에 나서는 셈"이라고 말했다.

"부업을 염두에 두고 독서지도사를 택한 여성들에게 쉽지 않은 결단이었을 것"이라는 박사무국장은 "자신이 갖고 있는 지식과 시간을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나눠 쓰겠다는 의식이 강한 분들"이라고 말했다. 봉사단원중 41명은 '평생봉사서약'까지 했다.

97년부터 이곳을 찾고 있는 정은주(42.동작구 상도4동)씨는 "학생 수가 점점 늘어나면서 매주 하루 수입을 포기한다는 게 부담스러워 잠깐 갈등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봉사는 점점 그 맛에 빠지게 하는 마력이 있는 것 같다"는 게 갈등을 이겨낸 정씨의 고백. 봉사를 하는 엄마의 모습을 자랑스러워하는 중학생 딸도 큰 격려가 됐다.

각지에 흩어져 사는 교사들이 매주 모이기도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기다리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빼먹을 수 없다.

서성숙(46.구로구 고척동)씨는 "아이들은 자기 선생님이 오지 않으면 방마다 찾아다니며 '우리 선생님 왜 안 오셨느냐'고 묻는다"며 "그 모습을 떠올리며 발길을 재촉하곤 했다"고 말했다.

아름다운 사람에게는 아름다운 일만 보이는가.

신현숙(38.경기도 광명시 광명7동)씨는 "봉사를 하면서 정말 살 만한 세상이란 걸 깨닫는다"고 말한다. "이곳에 와 보니 봉사하시는 분들이 참 많아요. 보육원 인근 피아노학원 원장님은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하는 원생들을 무료로 지도해 주신다네요. 다들 각박하게 사는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한우리독서봉사단 02-363-0538.

이지영 기자<jylee@joongang.co.kr>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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