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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증시에서 ‘살까 말까 ’망설이는 당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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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미국의 전설적 펀드 매니저인 피터 린치는 ‘칵테일 파티’이론으로 증시의 흐름을 진단했다. 예컨대 주가가 맥 못 추고 떨어질 때 칵테일 파티장에 가면 참가자들이 그의 직업을 듣고는 곧 조용히 사라진다. 그러나 주가가 바닥에서 30% 이상 오르면 사람들이 떼로 몰려 린치를 에워싸고 “어떤 주식을 사는 게 좋으냐”고 묻는다. 또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A주식이 좋아. 그걸 사야 돼”라고 떠들어대면 그 종목의 주가는 머잖아 하락한다. 파티장의 이색경험을 통해 린치는 ‘군중심리의 투자학’을 간파했고 이를 역으로 투자에 적용했다. 그가 피델리티에서 마젤란 펀드를 13년간 굴리며 2700%라는 경이적 수익률을 올린 비결도 이렇듯 다수의 투자심리를 제대로 읽었기 때문이 아닐까.

린치의 안목으로 볼 때 한국 증시는 지금 어디쯤 서 있는 것일까. 연초 1400 선에서 출발한 종합주가지수는 지금까지 20% 급등하면서 전인미답의 1700시대를 열어젖혔다. 한 달 만에 100포인트가 오르니 빨간 시세판이 ‘불타오른다’는 수사가 나올 정도다. 신문과 방송 뉴스엔 주식 얘기가 머리기사로 등장했다.
하지만 많은 투자자는 아직 눈치를 보고 있다. 객장 앞을 머뭇거리며 ‘과열이다’ ‘조정이 온다’는 얘기에 더 솔깃해한다. 과거 상승장에서 상투를 잡았다 주머니를 털렸던 학습효과 탓도 있다. 망설이는 사이에 주가는 계속 오르고 조바심만 더한다.

그러나 ‘주가는 우려의 담장을 타고 올라간다(climbing the wall of worry)’는 월가의 격언이 있다. 대중들이 선뜻 투자를 결심하지 못하고 저울질을 계속하는 동안 주가는 약을 올리듯 꿈틀꿈틀 오른다는 얘기다. 한국 증시의 현주소도 아직은 이 단계인 것으로 보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 서넛만 모여도 부동산 얘기를 했다. 하지만 아직 주식 얘기로 불이 옮겨붙지는 않았다. 신문과 방송도 연이어 주가 급등을 보도하지만, 말미에는 꼭 ‘과열이 우려된다’라는 진단이 따라붙는다. 과거의 경험은 ‘조정’과 ‘과열’을 걱정할 때 주가가 상투였던 적은 없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러나 주가가 계속 오르면 사람들의 마음이 조금씩 변한다. 자꾸만 악재보다는 호재 쪽으로 마음이 끌린다. 드디어 대중들도 주식매수에 본격 가세하는 것이다. 주가는 탄력을 받아 더 오르게 된다. 실물경기 흐름에 후행해 발표되는 각종 경기지표와 기업실적 지표들은 기대했던 대로 좋은 쪽으로 발표되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게 된다.
이쯤 되면 대중은 장밋빛 낙관론에 푹 빠진다. 언론도 과열 운운하는 얘기를 감히 꺼내지 못한다. ‘투자 파티’의 열기는 갈수록 고조된다. 거품은 점점 부풀고, 앞서 투자해 한몫 챙긴 사람들은 슬슬 주식을 팔아 현금 비중을 높여나간다.

이렇듯 투자의 세계에선 낙관론이나 비관론이 한쪽으로 기울면 투자자들은 평소와 다른 기대수익률을 머릿속에 채워넣을 때가 많다. 이를 심리학에선 ‘기억의 재구성’이라고 부른다. 고려대 의대의 안서원 박사(시카고대 심리학)는 “인지심리학에 따르면 사람들은 사실을 그대로 기억하지 않고 자기 존중감을 높이는 쪽으로 기억을 다시 구성한다”고 말했다. 주식이 오를 것이란 기대감을 과대평가해 유리한 상황만을 선택적으로 뇌리에 저장한다는 것이다.

이는 유명한 ‘탈레브 이론’과도 맞닿는 설명이다. 금융수학자인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는 투자할 때 이익과 손실이 뒤섞여 있는데도 투자자는 이를 별개의 것으로 생각해 요리조리 손해를 피할 수 있다고 여긴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자신은 교통사고에서 예외라는 생각에 곡예운전을 일삼는 운전자와 같은 운명에 처할 수도 있다.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는 “활황장에 동참하지 못한 사람들은 돈 번 사람들이 기회를 잘 활용했다는 생각보다, 자신이 돈 벌 기회를 놓쳤다는 심리를 갖게 된다”고 했다. 다만 그는 “뒤늦은 시장참여를 부화뇌동으로 볼 수는 있지만 꼭 비합리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개인마다 이익과 손실에 대한 개념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건 상투나 바닥으로 치닫기 시작하면 투자자들이 다른 목소리를 듣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대중의 통념을 거스르는 역발상 투자를 실행하기엔 너무나 큰 공포가 따르기 때문이다. 굿모닝신한증권 정의석 투자분석부장은 “투자가 조지 소로스는 이를 ‘시장의 지배적 평균’이라고 설명했다”고 말했다. 왕따 심리를 피하려고 큰 흐름에 모든 사람이 묻어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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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 장세는 이제 막 풀무질에 들어간 것 같다. 그러나 항상 새겨둬야 할 것은 ‘기억의 재구성’이다.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상황을 해석해선 큰코다칠 수밖에 없다는 게 버블 역사의 교훈이다. 불꽃 증시에 피로 증상이 감지되면 거품의 아픈 역사를 재구성할 때라는 얘기다.

강남규·김준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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