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27돌 기념 노 대통령 특별회견/대담=이제훈편집국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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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당은 6·29의 명예로운 매듭”/물가·임금관리 미흡한점 아쉬워/“참고 듣다보면 얻는게 많고 조직의 힘은 조화에서 나와”
­지난 18일 밝히신 민자당 탈당과 중립 선거관리 내각구성이라는 대결단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큰 파장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데 그렇게 결심하시게 된 동기와 배경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우리 국민이 저를 대통령으로 뽑아준 것은 제가 지난 87년 6·29선언을 하고 민주화를 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민주주의를 더욱 발전시키는 것은 이러한 국민의 여망에 부응하는 것이고,역사와 민족에 대한 저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3·24총선때 일부 지역에서 관권이 개입되었다는 것이 뒤늦게 밝혀져 물의가 빚어졌을때 저의 실망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습니다.
이래서는 안되겠다… 다시 6·29선언을 하는 심정으로 우리 선거 문화를 바로잡는 비상하고 획기적인 조치를 해야 한다… 그것이 6·29선언을 명예롭게 마무리 짓는 것이라는 신념에서 이번 결단을 내린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구상하던 정국수습 방안과 김영삼총재의 생각은 많은 점에서 일치했습니다. 나는 김 총재의 건의를 받아들여 중립적인 선거관리 내각을 구성키로 결단을 내리면서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한때의 미봉적인 사태 수습책이 아니라 진정 선거문화의 변혁과 민주주의의 발전을 이루는 방안이 되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당적을 가지고 있어서는 안된다… 정당을 떠나 진정으로 엄정한 중립이 되어야 한다는 굳은 믿음에서 당적을 떠나기로 한 것입니다.』
­대통령께서 민자당을 탈당하고 난후 전개될 정국의 방향에 대해 온 국민이 궁금해 하는 것 같습니다.
『현실정치의 차원을 이미 떠나기로 결정한 이상 제가 우리 정치의 앞날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다만 나의 희망사항을 말한다면,이제 우리 정치도 구태를 벗어야 합니다.
우리 40여년 헌정사를 돌아보면 정치권은 늘 민주냐,반민주냐하는 체제 논쟁과 선거의 공정성에 관한 시비로 힘을 소모해 왔습니다.
나는 중립적인 선거 관리 내각을 구성하고 당적을 떠나 오는 대통령선거를 헌정사상 가장 공명한 선거로 치러 관권선거에 대한 고질적인 시비를 근본적으로 청산하려 합니다.
집권당이 선거를 치르면서 관권에 의존하려는 타성도,관권의 선거 개입 시비를 득표할동의 전면에 내세우는 구습도 모두 청산되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 정치권은 국가 발전과 민생 안정과는 아무 상관없고 오직 정치인들의 이해만을 앞세운 이런 종류의 경쟁을 끝내고 진정 나라와 겨레의 앞날을 걱정하는 정치,창조적이고 생산적인 정치를 해야 할때입니다.
나는 9·18결단이 우리 정치가 진정한 정책대결의 정치,생산적인 정치로 대전환을 하는 계기가 되기를 진정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9·18결단은 민자당 입장에서 보면 김영삼총재체제의 정권재창출에 부담이 되는 것이 아닐까요.
『당리당략의 차원을 떠나겠다고 선언하고 내린 결단을 다시 당리당략의 차원에서 평가해서야 되겠습니까.
진정으로 선거문화의 획기적인 변혁을 이루어 보겠다는 저의 진의를 순수하게 받아들여 주기 바랍니다.
중립적인 선거관리 내각 구성은 나도 생각하고 있었지만 김 총재가 내게 건의해온 것이라는 사실을 유념해 주기 바랍니다.
관권이 선거에 개입해서도 안되고,또 관권이 선거의 결과를 좌우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는데 나와 김 총재는 인식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김 총재는 평생을 이 나라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분이고,깨끗한 정치는 늘 그분이 주장해 오던 바였습니다.』
­그동안 대통령께서는 오랜 정치경력과 국민적 인기,여당대표로서 국정운영 경험 등을 갖춘 김영삼후보의 당선가능성을 여러차례 말씀하신바 있는데 아직도 같은 생각이신지요.
『엄정한 선거관리를 위해 중립을 지키겠다는 입장에서 내가 선거 결과를 전망하는 것은 적절한 일이 못될 것입니다.』
­앞으로 민자당과 정부간의 당정협조가 어떻게 변모될지에 대해 정치권은 물론 국민들의 관심이 높은데요.
『대통령이 집권당 당적을 떠나 선거관리 내각을 구성하는 것이 우리 헌정사에 처음 있는 일인만큼 어려움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엄정한 중립성에 입각해 상식과 순리대로 이끌어 나가도록 할 것입니다.』
­중립선거관리 내각구상의 기본틀은 어떤 것입니까. 인선기준 이라든지,내각운영 방안이라든지 하는 점에서….
『관권의 선거개입을 막아 공명정대한 선거를 치를 수 있는 내각을 구성하되,국정 수행에 공백과 차질이 없도록 최선을 다 할 방침입니다.
지난 18일 김 총재에게 선거관리 내각구성에 관해 정치권의 협의를 당부한바 있으며 김 총재가 정치권의 의견을 수렴,건의를 해오면 그것을 바탕으로 새 내각을 구성할 것입니다.』
­이제 임기 5개월을 남기고 계십니다. 지난 4년7개월의 집권기간을 어떻게 평가하고 계십니까.
『우리가 나라를 세운후 지난 4년7개월처럼 안팎으로 큰 변화를 겪은 일이 일찍이 없었을 것입니다. 모든 분야에서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정부의 정통성,인권,언론의 자유와 관련한 모든 시비가 사라졌습니다. 우리 겨레에 숱한 고통을 준 냉전의 벽을 자주적으로 극복하기 위해 북방정책을 펼쳐 옛소련·중국 등 대륙국가들과 관계를 정상화해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험을 줄이고 통일의 환경을 조성했습니다.
경제,다들 어렵다고 하고,어려운 점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만 지난 4년동안 민주화를 하면서도 우리 경제의 규모와 국민소득은 두배이상 늘어났습니다. 우리 국민이 피땀으로 이룬 번영과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한국인임이 자랑스런 민족 자존의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격동기에 대통령을 하면서 힘든 고비도 많았지만 보람도 컸다고 생각합니다.』
­아쉬었던 일은 무엇이며,잘하셨다고 생각했던 것이 지나고 보니 잘못된 것이라고 여겨지는 일은 없으신지요.
『6공화국 출범 초창기 각계각층의 욕구가 한꺼번에 분출되던때,다소 무리가 있더라도 물가와 인금관리를 더 철저하게 해서 경제가 받는 충격을 보다 줄였더라면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제2이동통신업체 선정이 빚은 물의도 없었더라면 더 좋았을 일입니다.』
­이 시점에서 3당합당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영삼씨가 민자당 대통령후보가 된 것까지를 포함해서 말입니다.
『민자당이 정치적 안정의 중추역할을 확고히 해 주었기 때문에 민주화 과정의 혼란을 조기에 극복하고 착실한 성장을 계속할 수 있었다고 믿습니다.
김영삼총재는 우리 헌정사상 처음으로 집권당의 자유경선에 의해 대통령후보가 되었습니다.
평생을 민주화를 위해 헌신해온 김 총재가 6·29선언으로 열린 민주주의 시대를 맞아 당원의 선택으로 후보가 된 것은 뜻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의 업적가운데 민주화와 북방정책의 성과를 꼽고 있습니다만,특히 민주화과정에서 보여주신 인내심은 보통을 넘는 것입니다.
대통령께서는 자신의 인내심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요. 혹시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태생이라고 할까,타고난 개성도 있겠지요. 참지 못하는게 우리 국민의 단점인데 누가 어떤 소리를 해도 참고 듣다보면 일부는 받아들일게 있습니다. 참지 못하면 협상과 타협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나는 오랜 군생활에서도 참는 지혜를 배운것 같습니다. 조직의 조화에서 힘이 나온다는 원리 말입니다.』
­집권중 잦은 개각 등이 정책의 일관성을 훼손하고 리더십 확보를 저해하는 요인이 됐다고 보지는 않으신지요.
TK중심 인사 등에 비판의견도 많습니다만….
『혁명적이라 할만큼 급변하는 정치·사회상황과 세계적 격동기 속에서 잦은 개각이 불가피하게 이루어진 부분이 많다는 점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의도적으로 특정지역 인사를 우대하거나,출신지역 때문에 차별을 둔적은 없습니다.』
◎“한­중수교는 중국이 서둘러 성사된 것”
­자치단체장선거는 정부가 약속했다가 못지킨 것이 되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연기 이유가 정부측에서 발표한대로 경제적 요인 때문만입니까?
『자치단체장선거를 연기하기로 한 것은 한해에 네차례의 선거를 치르고는 우리 경제의 발전도 사회의 안정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많은 사람의 뜻에 따라 각계 각층의 의견과 전문가들의 판단을 수렴한뒤 고심끝에 내린 결단입니다.』
­중국을 곧 방문하시게 되는데 한중 정상회담에서는 무엇이 중점 논의될지 관심이 큽니다. 등소평과는 만나시게 됩니까?
『특히 남북한 관계발전과 동북아시아의 안정을 위해 한중 두나라가 협력해 나가는 방안을 깊이있게 다루고자 합니다.
사실 우리가 중국에 매달려 수교된 것으로 아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중국쪽이 정상화를 서둘렀습니다. 중국입장에서 우리에게 고마운 점이 있을 겁니다.
등소평 전 군사위주석은 현재 공직에 있지 않기 때문에 통상 외국 정부 지도자와는 만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나와의 면담여부도 아직 결정된바 없습니다.』
­통일시기를 언제쯤으로 전망하십니까. 통일의 바람직한 형태는 어떤 것입니까.
『현재의 국내외 정세 변화를 감안할때 내가 전망한 90년대 중반,늦어도 금세기가 넘기전에 통일이 가능하다는 판단은 수정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내가 89년 9월 국회에서 밝힌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자주·평화·민주가 보장되고,남북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 방안에 따라 통일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경제상황,세계적인 공산주의 몰락 등으로 북한의 급격한 붕괴 전망도 있고 그렇게 될 경우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도 배제할 수 없는데….
『북한은 체제가 안무너진다는 보장위에 개방하는게 과제입니다. 김일성주석이 더 오래 살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언제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거기에 경제적 어려움은 상상 이상입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우리가 돕겠다면 거부했는데 금년부터는 적극적으로 어려움을 실토할 정도입니다.
우리는 북한내에 폭동이나 내란이 일어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북한체제의 변화가 질서있고 평화롭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북한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난다면 이는 한반도 전체에 영향을 주는 불안요인이 될 수도 있으며,남북한 동포 모두를 위하여 바람직한 일이 못됩니다.』
­대통령 취임직후부터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해오던 것으로 아는데 그 문제와 관련,발표안된 부분이 있지 않습니까.
『숨겨진 것은 없습니다. 그동안 얘기가 다 나온 셈이에요. 남북정상회담은 전쟁위협을 덜기 위한 것이었는데 북방정책 성공으로 사실상 효과를 거두었다고 생각합니다.』
­북방정책이나 민주화에 대한 긍정적 평가와는 달리 대통령의 경제치적과 국가기강면에서는 평가가 낮지 않나 생각됩니다.
민주화 과정과 그 결과에 따른 어려움이 많은 것은 이해됩니다만 여론이나 인기를 너무 의식한 결과가 아닌지요.
사치·낭비풍조 등을 얘기합니다만 그런 것까지도 대비해야 했다는 점에서 정부의 책임을 말하고 있는데요.
『민주화가 경제와 국가기강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고 이루어질 수 있다면 더이상 바랄 수 없이 좋은 일이지요.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이상일 뿐입니다.
나라의 근본질서가 바뀌는데 구질서에 바탕을 둔 경제와 국가기강이 그대로 유지되기를 바라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혁명적이라 할만큼 급속히 이루어진 우리의 민주화는 경제와 사회기강에 적지않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 사실입니다.
권위주의적 질서가 한꺼번에 무너지면서 국민 각계각층의 자기몫 찾기 경쟁과 집단이기주의가 심화되고,사회의 기강이 해이해져 한때 민생치안문제까지 심각했습니다.
격심한 노사분규속에서 임금이 한꺼번에 너무 오르고 근로기강이 해이되어 우리 경제의 경쟁력이 급속하게 떨어졌습니다.
지난 4년동안 우리사회는 바로 이 과정을 겪으면서 큰 진통을 겪었고 아직도 남아있기 때문에 경제에서 낮은 평가를 받았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우리사회가 짧은 기간에 사회와 경제의 민주화 과업을 성공적으로 이루어가고 있다고 믿습니다.
땅값·집값과의 싸움에서도 이겼으며,취약점이던 물가도 올들어 잡혔습니다. 금년부터 우리 경제는 안정속에 새로운 활력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금년 상반기중 우리 경제는 수출과 제조업을 중심으로 7%에 가까운 건실한 성장을 하였으며,물가도 8월 현재 4.5%에 그쳐 작년에 비해 매우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대기·수질오염·쓰레기 등 공해문제,교통문제도 요즘 국민적 관심사가 되고 있습니다만….
『환경문제는 이제 국제적인 문제가 되어 기술 및 무역장벽으로 작용하게 되었습니다.
환경보전은 정부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이 그 주체로서 힘을 합해나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리나라 자동차대수가 87년말 1백60만대에서 작년말에는 4백20만대가 되었습니다.
자동차의 증가에 따른 심각한 교통체증은 국민생활에 큰 불편을 줄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큰 손실을 주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 상품의 국제경쟁력을 약화시키는 큰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정부는 교통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91년부터 청와대에 사회간접자본 투자기획단을 설치하여 교통투자를 확대해나가고 있습니다.』
­제2이동통신사업자 선정과 관련한 파문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유야 어떻든 이동통신사업자 선정과 관련해 사회적 물의가 빚어진데 대하여 국정의 최고책임자로서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제2이동통신사업은 국책사업으로 91년 국회에서 여야 만장일치로 관련법령을 개정해 그에 따라 허가대상업체를 선정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업자 선정과 관련하여 사회적 물의가 빚어져 더이상의 불필요한 국론분열을 막기 위하여 정치적 결단을 내렸던 것입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의 화해문제는 어떻습니까.
『전직 대통령과의 관계에 있어 서로간의 위치에 따라 일시적인 오해가 있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분도 항상 국가를 먼저 생각하는 분이기 때문에 앞으로 서로 시간과 여건히 허락하는대로 만나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갖게 되면 모든 일이 잘 풀려나갈 것입니다.』
­퇴임하시면 우리 국민은 세분의 전직 국가원수를 갖게 됩니다. 퇴임후 구상은 어떤 것입니까. 또 바람직한 대통령상·대통령학은 어떤 것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일속에 묻혀 지내다 보니 퇴임후의 문제는 깊이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
보통사람으로 돌아가서 평범한 생활을 하며 그동안 자주 만나지 못했던 친지나 이웃들과 함께 시간을 많이 갖고 여행이나 독서,그리고 테니스와 같은 좋아하는 운동도 하고 싶습니다.
전임 대통령으로서 국가를 위해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부르면 언제,어디든지 찾아가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바람직한 대통령상… 대통령학… 지금 대통령 직무를 수행하고 있는 사람이 답변하기에는 적절치 않은 것 같습니다.』<정리=김현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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