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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미국이 일 망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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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의 북한 자금 송금이 장기간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미국의 인내심이 바닥을 보이고 있다. BDA에 묶여 있던 자금을 받기 전까지는 6자회담에서 합의한 핵 동결을 이행하지 않겠다는 북한의 태도에 매우 실망하고 있는 것이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미 행정부가 그동안 북한의 행동을 충분히 읽어내지 못했음을 시인하면서 "(실수로) 일을 망쳤다(screwed it up)"라고 말했다고 교도통신이 지난달 31일 보도했다. 통신은 미.일 관계에 정통한 소식통들의 말을 인용해 부시 대통령은 4월 27일 캠프 데이비드 산장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회담하면서 이런 불만을 털어놨다고 전했다. 아울러 부시 대통령의 이런 말은 북.미 협상 과정에서 미국이 과오를 범했음을 처음으로 시인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부시 대통령이 6자회담에서 합의한 핵 폐기에 아직도 나서지 않고 있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강한 불신을 표출했다고 덧붙였다.

이 와중에 북한은 BDA 자금을 받기 전까진 핵 동결 합의를 이행할 수 없다는 뜻을 재차 밝혀 북.미 간 갈등의 골이 깊어가고 있다. 김명길 북한 유엔대표부 차석대사는 지난달 31일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BDA 자금을 받고 난 뒤 영변 원자로를 폐쇄할 것이며, 다른 길은 없다"고 말했다.

이런 와중에서 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의 중국 방문이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나면서 미국 일각에서 행정부의 북한에 대한 유화적인 태도에 불만이 더욱 커지고 있다. 힐은 지난달 30~31일 중국을 방문, 우다웨이(武大偉) 중국 외교부 부부장과 BDA 송금 문제 해법을 논의했지만 접점을 찾지 못하고 빈손으로 귀국길에 올랐다. 힐 차관보는 중국 정부가 BDA 경영진을 교체해 미국이 다른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중국 측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따라서 BDA 문제는 조만간 해결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의 한 관리는 이와 관련, "BDA 문제와 관련해 앞으로 적어도 2주 안에는 극적인 변화가 없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힐 차관보는 방중에 앞서 지난달 29일 인도네시아에서 기자들과 만나 "북한은 BDA의 동결자금 송금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을 초청하고 영변 원자로를 폐쇄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김명길 차석 대사가 이를 일축하고, 중국 방문도 성과없이 끝나 미 국무부의 유화적 입장은 입지가 점점 약해지는 상황이다.

미국은 지금까지 BDA 자금 송금을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미국 와코비아 은행을 중개 기지로 삼아 북한 자금을 송금하는 방법도 고려했으나 아직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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