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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고비' 넘어 세상 끝에 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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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2007년은 고상돈(79년 사망)씨가 한국인으로는 처음 에베레스트(8848m)에 오른 지 30주년 되는 해다.

'2007 한국 로체샤르.로체 남벽 원정대'(중앙일보.KT 후원, 신한은행.㈜트렉스타 협찬)의 로체샤르 등정 성공 소식은 에베레스트 등정 30주년을 기념하는 또 하나의 쾌거다. 정상 공격 예정일을 보름이나 넘기고도 정상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이상 기후' 덕이었다.

원정대는 지난달 29일 해발 8100m의 캠프4 사이트에 텐트 2동을 설치함으로써 마지막 교두보를 확보했다. 다소 비관적이었던 베이스캠프의 분위기는 일거에 반전됐다.

엄홍길(47) 대장은 "거의 수직에 가까운 절벽을 프런트 포인팅(아이젠을 부착한 설상화 앞부분을 빙벽에 차넣으면서 오르는 방식)으로 4일간 올라왔다"고 전했다.

30일 변성호.모상현.우성호 대원이 캠프4에서 정상으로 가는 루트를 개척했고, 캠프4에서 하룻밤을 지낸 뒤 31일 새벽 엄 대장과 변성호.모상현 대원이 정상 공격에 나섰다. 원정대는 오후 1시(한국시간 오후 4시)쯤 마침내 3000m가 넘는 수직 절벽 구간을 넘어 능선 구간에 접어들었다. 정상 부근에는 초속 45m의 강한 바람이 불어 체감온도가 영하 40도까지 떨어졌지만 원정대는 더욱 속도를 냈다. 엄 대장을 비롯한 3명의 대원과 1명의 셰르파는 산소마스크를 착용한 채 13시간 동안 물 이외에 아무것도 먹지 않고 정상에 오르는 쾌거를 이룩했다. 엄 대장은 네 번째 로체샤르 원정에서 기어코 성공을 거뒀다. '3전 4기'다. 2006년 5월 원정 때는 정상 200m를 앞두고 기상악화로 발길을 돌렸고, 2003년에는 150m 앞에서 눈사태를 당해 대원 2명을 잃은 뒤 철수를 했던 아픈 기억이 있다.

2000년, K2(8611m)에 올라 14좌(히말라야 8000m 이상 14봉) 완등의 위업을 달성했던 엄 대장은 그 직후 목표를 '14+2'로 새로 설정했다. 알룽캉(8505m)과 로체샤르(8400m)를 추가한 것이다. 8000m 이상이지만 위성봉으로 간주해온 이들 봉우리는 최근 독립적 성격을 가진 주봉으로 인정하는 추세다. 엄홍길 대장은 지금껏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14+2'를 달성한 것이다.

로체=김춘식 기자

◆히말라야 14좌=히말라야 산맥에서 8000m가 넘는 주봉 14개. 에베레스트(8848).K2(8611).캉첸중가(8586).로체(8511).마칼루(8463).초오유 (8201).다울라기리(8167).마나슬루(8163).낭가파르바트(8125).안나푸르나(8091).가셔브룸 1봉(8068).브로드피크(8047).가셔브룸 2봉 (8035).시샤팡마(8012).

로체 주변만 쾌청 … 날씨도 도왔다

31일 현재 히말라야 원정대는 모두 철수했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는 5월 중순까지도 전 세계에서 몰려온 30여 개의 등반팀이 바글거렸다. 그러나 지금은 적막감만 흐르고 있다. 히말라야 전체를 통틀어 로체샤르.로체 남벽 원정대만 남아 있다.

히말라야에는 5월 중순부터 아라비아해의 몬순(계절풍)이 불기 시작한다. 매일 엄청난 양의 눈이 내리기 때문에 등산은커녕 입산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5월 말이면 네팔 쪽 히말라야에는 일반 트레커들의 발길도 뚝 끊어지게 마련이다.

3월 19일 서울에서 출발한 로체샤르.로체 남벽 원정대는 예정대로 3월 29일 해발 5220m 지점에 베이스캠프를 설치했다.

원정대는 예정보다 1주일이나 이른 4월 4일 캠프1(5900m)을 설치했다. 몬순이 오기 전에 충분한 시간을 갖고 로체와 로체샤르 모두 오를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었다. 그러나 캠프2(6800m) 설치부터 고난의 연속이었다. 엄청난 눈사태와 스노 샤워(Snow shower.눈사태보다 작은 규모)가 원정대를 괴롭혔고, 낙석은 생명을 위협했다. 4월 30일 겨우 캠프2를 구축한 원정대는 캠프3(7400m) 설치에도 애를 먹어 오히려 보름 이상 일정이 늦춰졌다.

베이스캠프에서는 '정상 도전 시도도 못할 것'이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5월 하순에 접어들었는데도 유독 로체 베이스캠프 주변만 몬순이 오기 전의 날씨로 돌아간 듯 일주일 이상 쾌청한 상태가 계속된 것이다. 포기할 줄 모르는 엄홍길 원정대장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끝내 5월 마지막 날 정상 등정이라는 믿기 힘든 소식이 전해졌다.

로체=김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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