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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에 흠집남긴 민자 도난사건/김석현 사회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민자당 서울지부 「안방」금고에서 도둑맞았던 거금 3억6천만원이 되돌려졌다.
민자당측 입장으로선 세상에 알려지지 않아야 좋았을 털린 돈의 엄청난 규모가 동시에 드러났다.
4억4천만원이라고 스스로 밝힌 거액중 상당부분을 되찾은 안도감보다 거짓말이 들통났다는 당혹감이 민자당으로서는 아마 더 클 것이다.
「손바닥으로 하늘가리기」식 보안작전이 명색이 공당이라는 대조직의 신용만 또한번 떨어뜨린채 8일만에 실패로 끝난 결과가 됐다.
이번 도난사건엔 처음부터 개운치 않은 대목들이 너무 많았다.
민자당은 도난사실을 서울경찰청 간부에게 신고하며 「절대비밀」을 요구하고 피해액을 8천만원으로 축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범죄피해를 반드시 신고해야 하는 명문규정도 없거니와 한준수 전연기군수의 관권선거 폭로로 세상이 떠들썩한 판에 하필 노태우대통령과 김영삼총재가 당기간요원들에게 추석 「떡값」 명목으로 내려보낸 것으로 알려진 「격려금」이 털린 점을 고려해 이해한다고 치자. 문제는 거짓말이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취재진·수사당국에 시종 내보인 비뚤어진 오만함은 묵과해선 안될 성격이 분명했다.
중앙일보 단독보도로 거액 수표뭉치회수사실이 알려진 15일에도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퉁명스레 부인으로 일관했고 뒤늦게 시인하면서도 『회수액은 7천만원』이라고 예의 축소조작기도를 반복하다 4억4천만원이라고 실토(?)하며 궁색한 변명으로 일관했다.
하루가 지나도록 회수사실을 통보받지 못해 범인추적은 커녕 영문도 모르고 있던 서울경찰청 간부는 또 민자당으로부터 『왜 기밀을 누설했느냐』는 엉뚱한 닦달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과정에서 경찰은 경찰대로 당측이 수표추적을 위한 수표번호를 숨기거나 은행측에 지불정지요청을 직접 할때도 침묵만 지키는 무력함을 보였다.
집권당이라는 「힘」을 믿고 「장물회수」 사실조사 속이는 쪽이나 시민들 앞에선 호랑이같다가도 권력앞에서면 움츠린채 눈치만 보는 경찰.
소위 지도층·공복을 자처하는 두 거대조직이 보인 태도는 외부인 침입 불가능상태에서 일어난 도난사건 자체가 풍기는 의혹 냄새와 함께 「우리수준이 이것 뿐인가」하는 실망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민자당은 거듭된 거짓말로 도난당한 돈이 4억4천만원보다 더 많은 것 아니냐는 의심에도 할말이 없게됐다. 자업자득이다. 「자,이제는」 이런 거짓말·속이기 풍토부터 추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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