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드」 유혹에 뺏긴 젊음(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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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한가위 연휴 마지막날인 13일 오전 서울 성북경찰서 형사계 보호실에는 상습 본드흡입혐의(유해화학물질 관리법위반)로 붙잡혀온 홍성열씨(22·무직·서울 정릉2동)가 멍한 눈빛으로 벽을 쳐다보고 앉아있었다.
같은 죄목으로 1년간 춘천교도소에서 복역하고 한가위날인 11일 출소한 홍씨는 바로 다음날인 12일 오후 또 본드를 흡입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혀 왔으니 「용서해달라」고 말할 처지도 못되고 모든 걸 체념한듯한 표정이었다.
가족들에 따르면 홍씨가 처음 본드냄새를 맡기 시작한 것은 5년전인 고1때부터. 호기심에 시작한 흡입이 습관으로 변한 고2때는 「공부하기 싫어」 학교도 중퇴했다. 의류공장에 재단사로 취직했지만 본드 때문에 여기에서도 쫓겨났다.
매사에 의욕을 잃고있던 홍씨가 유일하게 취미를 붙여 기타를 배우기 시작한 3년전부터는 아예 밥먹듯 본드를 코에 댔다. 본드를 마시면 뮤직비디오에서 본 외국의 유명한 헤비메틀 기타리스트처럼 자신도 화려한 무대 위에서 긴머리칼을 휘날리며 멋지게 기타를 연주하는 듯한 환각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보다못해 부모들은 하나뿐인 아들 홍씨를 본드의 구렁텅이에서 건져내기위해 90년 1년간 정신병원에 격리 치료시켰으나 그것도 별무소득. 퇴원하자마자 홍씨는 다시 본드흡입을 시작했고 지난해 9월5일 본드흡입죄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으며 선고받은지 나흘만에 같은 혐의로 경찰에 붙잡혀 징역1년을 살고 나왔는데 이번에는 만기출소 하루만에 또 본드를 흡입해 철창신세를 다시 지게 된 것이다.
『차라리 우리 애를 교도소에 오래 있게 해주세요. 그게 하나뿐인 아들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지난 5년간 아들을 구해내기 위해 별의별 수를 다 써봤다는 홍씨의 아버지(65)는 보호실 철창 너머로 「본드에 빼앗긴 아들」을 바라보며 경찰관에게 기막힌 부탁을 하고 있었다.<한창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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