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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끝) 슬기롭게 대비하는 길|기성세대 열린 마음 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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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2천6백68.
서기 2000년1월1일을 기하는 카운트다운은 오늘 이 숫자로부터 출발한다.
이미 본 시리즈를 통해 진단해 보았듯이 2000년대는 과학문명의 발달에 힘입어 우리 가정은 엄청난 변화가 올 것으로 예상된다.
사람이 모여 사는 가정, 그리고 이를 기초단위로 하여 이루어지는 사회란 기실 어떤 시점을 못박아두고 변화하는 것은 아니다.
또 2000년대라는 시간대는 어느 날 갑자기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전혀 다른 우주공간으로부터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통계청의 예측에 따르면 우리 나라 사람들의 평균 수명은 2010년에는 76·14세가 된다고 한다.
성별로 살펴보면 남자는 73·76세, 여자는 78·74세가 평균수명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있다.
1992년 오늘 현재 56세 이하인 남성과 61세 이하인 여성은 통계적으로 볼 때 2010년까지는 살 것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결국 오늘 이 땅에서 살고있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21세기에도 여전히 살아갈 것이라는 얘기다.
한발자국씩 차츰차츰 다가오는 미래를「우리의 시대」, 나아가「나의 시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2000년대 가정 이렇게 달라진다』 시리즈를 위해 취재에 응했던 많은 관계전문가들은 무엇보다도 기성세대의 의식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는데 동의하고 있다.
늘어나는 여성 취업과 관련한 가사 돌보기라든가 가족관계에서의 변화, 자녀관·노인관은 물론 여가선용에 이르기까지 기성세대의 고정관념이 변화하지 않는 한 사회의 변화에 개인이 적응하지 못해 혼란과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집안 일이라든가 자녀양육은 여전히 여성의 전유물이어야 한다는 생각, 자녀를 부모의 부속물로 여기는 태도, 나이든 노인은 집안에 가만히 있어야만 한다고 여기는 것, 결혼은 집안과 집안간의 만남이라는 관념들은 인간 존중이라는 수평적 사고로 전환돼야 한다.
이동원 교수 (이화여대·사회학) 는 이를 위한 첫 단계로『지금까지「혈연」에 의해 지속돼온 공동체를 이제「이웃」으로 대체하는 일을 학자를 비롯한 지식인들이 해야한다』고 말한다.
공동체 개념의 확대는 개개인이 개별적인 노력으로 변화에 적응하기 힘든 것을 사회구조적 차원에서 제도를 마련하게 함으로써 보다 적극적으로 시민의식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마을단위로 세탁장을 마련하는 것은 점차 각 가정에서「가사=여성의 일」등식을 수정하게끔 도와준다는 설명이다.
2000년대의 여러 가지 변화 가운데 현재 우리의 가정에 가장 큰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은 가족관계의 변화다. 부부·자녀 등 가족관계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먼저「가족의 틀」이란 개인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객관적으로 다른 사람의 장점을 보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 사회학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이와 함께 특별히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 바로 가장의 위상 변화. 여성들의 의식변화에 따라 남편의 권위가 상대적으로 약해지고 있으며, 가정 안에서도 인격평등을 추구하게됨에 따라 가족들의 권리는 강해지지만 가장의 권위는 줄어들 수밖에 없게 된다. 달라지는 가족관계에서 남성 특히 가장이 적응해나갈 수 있도록 시민사회의 지원이 필요하며, 여성 스스로도 자신의 권리 주장과 함께 남성의 권리를 인정해주는 변화가 수반돼야만 한다.
2000년대가 가족해체라는 위기를 겪지 않기 위해서는 기업을 비롯한 각 직장에서도 경영 관리층이 사고를 바꾸어야 한다. 즉「남자는 직원일 뿐 아니라 한 가정의 가장」이라는 인식 하에 새로운 작업 모델링을 해야한다.
부모-자녀의 관계에서는「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소유의식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
하나의 인격체로 자녀를 대하고, 자녀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잠재능력을 개발해주는 것이 부모의 의무다.
한편 독신세대 등장 등「다양해지는 가족형태」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자녀들을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도록 「생활인」으로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전숙자 교수 (이화여대·사회생활학) 는 말한다.
2000년대를 대비한 자녀교육은 지금 이 순간부터 이뤄져야한다.
이원령 교수 (중앙대·유아교육) 는 『2000년대를 살아갈 자녀들은「정보의 사회」속에서 생활하게 된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정보지식을 얻는 방법, 그리고 갖게된 정보를 어떻게 응용해야 하는가에 대한방법을 정확히 알 수 있도록 연령에 맞게 지도하는「하우 투런」교육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이와 함께 한데 어울려 사는 방법도 가르쳐주어야 한다는 게 그의 견해. 전자통신이 발달한 정보사회에서는 집안에서 혼자 지내는 시간이 자연 많아질 수밖에 없게 되므로 한데 어울려 사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는다면 우리의 사랑스런 아이들은 외롭게 일생을 마감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광희 한국관광공사 기획관리본부장은 외국을 이웃처럼 넘나들며 살아가게 될 2000년대를 대비해 젊은이들을 사회에 대한 책임의식이 있는 사람으로 키워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견해를 보인다.
이웃이나 주위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 자기중심적인 인물로 성장하고 있는 오늘의 청소년들이 자기본분에 대한 책임의식이 철저한 외국의 청년들과 세계 무대에서 함께 겨뤄야한다는 것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2000년대는 여가시대다. 풍성하게 주어지는 여가를 즐기기 위해서는「여가=노는 것=필요 없는 것」이라는 의식부터 바꾸어야한다고 박원임 교수(고려대·체육학)는 말한다.
그는 여가교육이 어릴 때부터 이뤄져야 하며, 그 한 방안으로 학교교육과정에 레크리에이션을 넣자고 제안한다.
2000년대는 또한 노년의 시대이기도 하다.
노년의 시대를 살아가는데 있어 가장 필요한 것은「일」이다.
조기동 한국노인복지회장은『노인들에게「저희가 모든 것을 다 해드릴 테니 가만히만 앉아 계시라」고 요구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연로한 부모가 푼돈을 벌기 위해 나서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의식변화, 또 그런 주위 사람들을 보며「불효자」라고 수군대지 않는 사회분위기가 이루어져야 한다.
노후를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해서 한시 빨리 봉사를 생활화해야 한다.「남는 시간을 봉사」하는 것도 좋지만「시간을 쪼개어 봉사」하도록 하여 봉사가 생활 속에 자리잡도록 해야한다.
어린이·청소년의 교육과정에 봉사시간을 배정하는 것도 2000년대를 준비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2000년대의 변화를 가져올 씨앗들은 알게 모르게, 우리가 의식하든 안 하든 오늘도 뿌려지고 있고 여기저기에서 싹이 자라나고 있다. 2000년대를 성공적으로 살아갈 수 있느냐 아니냐는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달려있다.

< 홍은희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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