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관권선거」 문책 인색치 말라(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전직 군수의 관권선거개입 폭로는 수사결과 거의 대부분 사실로 확인돼 이제는 마무리를 어떻게 하느냐가 초점이 되고 있다. 검찰수사 결과 지난 총선거때 연기군에서는 공·사의 돈을 끌어모아 현금살포·선심사업 등을 자행했으며 도지사가 이른바 선거지침서를 내려 보내고 여당후보를 지원하는 자금제공을 했음이 모두 드러났다. 그동안 선거철이면 항상 논란되고 우리 모두 역시 짐작으로 알던 선거의 관권·행정개입의 실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사실 창피한 얘기지만 건국후 역대 선거에서 중립을 지켜야 할 행정부가 대소의 정도차이는 있을 망정 여당을 음양으로 지원한 사실은 뚜렷한 증거가 없더라도 누구나 느끼고 짐작해온 일이었다. 그것을 흔히 하는 말로 「여당프리미엄」이라고 표현하기도 했고 민주주의를 정착시켜가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앓아야 하는 후진국적 선거병의 하나쯤으로 치부해온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번 연기군 사건의 부각은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악습의 오랜 관행을 마침내 청산·극복할 때가 왔음을 말해주고 있다. 실제로 그런 관권의 관여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 여당후보가 떨어졌다는 사실은 그런 방식이 먹혀들지 않을만큼 세상이 변했음을 입증한다. 지난 40여년간 정부·여당이 무난히,요긴하게 누려오던 관권선거·행정선거를 이제는 더이상 해서도,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연기군 사건은 역설적으로 우리선거문화의 일대 개선을 기할 수 있게 하는 대단히 귀중하고 의미있는 사건이다.
따라서 이번 사건은 완벽한 수사와 함께 관련되는 정치·행정적 조치와 제도적 개선방안 등 마무리작업이 매우 중요하다. 우선 1차적으로 할 일은 여러차례 강조한대로 수사의 쾌속한 진행으로 한 점의 의혹없이 진상을 규명하고 사법처리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정부는 이제 사실이 대부분 밝혀진 만큼 더이상 감추고 부인하는 자세는 옳지 않다. 시인할 것은 시인하고 그런 바탕위에서 책임질 관련자에 대해서는 해임·징계·사법처리 등 문책을 단행해야 한다.
논리적으로 말한다면 충남지사가 연기군에만 그런 지시를 내렸을리가 없고 충남에서만 그런 관권개입이 있었을리도 없다. 정도차이는 있었을망정 틀림없이 전국적 현상이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수사의 전국적 확대와 범정부적 문책 역시 불가피하다는 논리가 나온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선거사범의 공소시효가 보름남짓 밖에 안남았고 문책 개각을 해봐야 남은 임기가 6개월 뿐이다. 쾌도난마식의 사건마무리에는 한계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현실과 논리의 이런 상충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연기군차원」만의 수습책으로는 국민정서에 맞지 않는다. 대국민 사과와 책임있는 선거관련 공직자의 문책·공정선거 보장을 위한 획기적 제도개선 등 정치·행정차원의 폭넓은 조치를 단행해야 마땅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