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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자살하면 사무라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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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마쓰오카 도시카쓰(松岡利勝) 일본 농림수산상이 28일 자살했다. 62세인 그는 정치헌금 스캔들과 관련, 심리적으로 큰 압박을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언론들은 전후 최초의 현직 장관 자살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29일 그의 시신을 실은 장의차가 도쿄 나가타초(永田町)의 총리 관저 앞을 지날 때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이하 모든 각료가 도열해 합장하는 모습이 전국에 생방송으로 전해졌다.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도 지사는 "그는 역시 사무라이였다"고 말했다. 마쓰오카 장관의 고향인 구마모토(熊本)현의 한 시민은 TV에 나와 "마지막 순간 그는 사나이였다"고 말했다.

자살을 바라보는 일본 사회의 반응은 이처럼 특이하다. "정치헌금 스캔들은 계속 규명돼야 한다"는 반응이 여전히 우세하지만 그의 죽음을 미화하는 듯한 반응도 적지 않다. 일본에는 이런 유의 자살이 많다. 그 배경에는 '죽음으로써 불명예를 씻는다'는 사무라이식 사고가 깔려 있다.

일본에는 '죽으면 물로 흘려 버린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큰 죄를 지은 사람도 일단 죽으면 더 이상 허물을 캐지 않고 덮어주는 것이다. 사무라이들은 스스로 명예를 더럽혔다고 판단하거나 주군에게 누(累)가 되는 일을 했다고 생각하면 할복자살을 했다. 일본 사회는 이를 미덕으로 삼아 왔다. 사나이답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사고는 일면 이해되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일본 특유의 의식으로 넘겨 버리기에는 너무나 전근대적이다. 위험해 보이기까지 하다. 알고 지내는 이발소 주인 사세 다쿠(佐瀨卓.40)는 이렇게 말한다. "A급 전범이 저지른 일들에 대한 속죄가 아직까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런 의식과 관련 있다. 죽으면 물로 흘려 버린다는 의식 때문이다. 고루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이번 마쓰오카 장관 자살 사건 이후 그의 죽음의 원인이 된 문제가 어떻게 다뤄질지 관심을 끈다. 여론이 어떻게 형성되고 정치헌금 문제가 어떤 결말에 이르느냐는 것이 관건이다. 그것은 일본 사회가 글로벌 스탠더드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잣대도 될 것이다.

김현기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