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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제41기 KT배 왕위전' 공배 잇기의 고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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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4강전>

○ . 한상훈 초단 ● . 박영훈 9단

제8보(101~115)=103은 20집이 강한 현찰이다. 또한 A쪽에서의 육박을 강렬하게 만들어 준다. 비세에 몰린 박영훈 9단이 '눈 감고' 두어 버린 이유다.

"고생 중에서도 집 없는 고생이 가장 힘들거든요." 신예 강자 김지석 4단이 103을 지지하며 한마디 토해낸다. 불리해도 집이 부족하지 않으면 기회가 있다. 전투에서 밀리거나 대마가 쫓기는 고통은 몸으로 때울 수 있지만 '집 부족증'에 걸리면 빚쟁이에 시달리듯 바둑이 끝날 때까지 달달 볶이게 된다. 유명한 싸움꾼인 김지석조차 103을 두고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인정한 이유다.

하지만 백이 104로 움직여 나오자 흑의 권리가 우세했던 상변이 순식간에 초토로 변한다. 107에 108의 붙임도 좋은 수. 한상훈 초단은 강적을 맞아 극도로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지만 흐름을 타고 있는 탓에 두는 수마다 정곡을 찌르고 있다.

"흑이 엷은 곳이라 당할 수밖에 없다"고 백홍석 5단은 말한다. 그래도 너무 당한 것 아닌가. 112로 백은 실리를 벌며 넘어가는데 흑은 113으로 공배를 잇고 있다. 집 없는 고생이 힘들다지만 이 공배 잇기는 너무 쓰라리지 않은가. 이럴 바엔 103으로 상변 어딘가를 지키는 게 낫지 않을까. 이 같은 질문에도 김지석 4단은 결국 실전의 103을 두둔하고 만다. 아닌 게 아니라 '참고도' 흑1로 수비해도 이곳은 B의 뒷문도 터져 있어 집이 되기 어렵다. 그렇지만 '참고도'와 실전처럼 유린당한 것의 차이도 어마어마하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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