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고전은논술의힘] 미디어는 그 자체가 메시지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11면

원자폭탄이 터지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경험했다면 누구도 그 무서움을 느끼지 못할 리 없다. 그러나 폭탄인 채 있을 경우엔 직접 손으로 만지더라도 원자폭탄 자체가 갖는 잠재적 위험과 공포를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피해자에게 ‘원자폭탄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선이 될 수도 악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은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캐나다 문화비평가 마셜 매클루언(1911~80사진)이 1964년에 쓴 미디어의 이해의 내용은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메시지란 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내용이다. 그런데 매클루언은 매체, 즉 미디어 자체가 메시지라고 말한다. 이 말은 미디어를 통해 전달되는 메시지보다 미디어의 특성이 우리 사회에서 더 큰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원자폭탄의 사용 방식이 아닌 존재 그 자체가 더 큰 의미를 지닌다는 뜻이다.

 매스미디어의 발달은 근대 이후 인류가 경험한 가장 놀라운 사회적 변화 가운데 하나다. 더구나 저자인 매클루언이 학자로서 활동했던 시기(1940~60년대)는 매스미디어의 중심이 신문과 같은 인쇄매체에서 전자기술에 바탕을 둔 새로운 통신매체로 옮겨가던 시대였다. 그는 전화와 텔레비전, 영화 등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정보 전달 수단이 발달하던 20세기를 ‘인간 확장의 최종국면’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인터넷시대를 경험했다면 아마도 이 말은 조금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뉴미디어의 등장이 메시지에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주장은 오늘도 설득력이 있다.

 

미디어의 특성이 사회적 변화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한 매클루언은 미디어 발달에 따라 인류 역사를 4단계로 구분한다. 직접적인 언어에 의해 정보 교류가 이뤄지던 구전(口傳)시대, 한자나 알파벳의 등장 이후 전개되는 문자시대, 15세기 구텐베르크 활판인쇄술 이후의 인쇄시대, 그리고 20세기 전기매체 시대가 그것이다.

 매클루언의 구분은 인간이 주로 어떤 감각을 이용해, 어느 범위까지, 그리고 어떤 성격의 정보를 교류하느냐에 토대를 두고 있다. 사회 구성이란 상호성이며, 인간의 경우 상호성의 핵심은 정보교류라고 할 때 그 정보교류의 내용이 아니라 체계 자체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 매클루언의 생각이다.
 매클루언의 이론은 대단히 독창적이면서도 이색적이다. 인쇄시대의 지나치게 선형적(단순명쾌하고 직선적)이고 논리적인 문화를 비판한 그는, 자신의 저서 자체도 대단히 비선형적인(불규칙하고 복잡한) 방식으로 썼다. 때로는 비약하고, 때로는 비논리적이기까지도 한 그의 주장은 그러나 독자들에게 강렬한 충격을 준다.

 박규영(전 연세대 철학과 강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