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202 - 발자국 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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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혹시 '발자국 소리'를 들어 보신 적이 있는지? 들어 보신 분이라면 그분은 흔적에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초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일반인은 '발자국 소리'를 들을 수 없다. 발자국은 소리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다른 모든 발자국 소리들과는 다른 발자국 소리를 나는 알게 되겠지. 다른 발자국 소리들은 나를 땅 밑으로 기어들어가게 만들지만 네 발자국 소리는 마치 음악처럼 여겨져서 그걸 들으면 난 땅 밑 굴에서 뛰어나가게 될 거야."('어린 왕자'의 한 번역본 제21장 중에서)

"가쁜 숨을 내쉬며 골목을 달리는 신문 배달원의 발자국 소리가 하루를 연다."

"아침 저녁 여러 번 나는 당신의 발자국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처럼 '발자국 소리'는 틀린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아주 많이 쓰이고 있다. 발자국은 '발로 밟은 자리에 남아 있는 발의 자국'을 말하며, '(수량을 나타내는 말 뒤에 쓰여)발을 한 번 떼어 놓는 걸음을 세는 단위'(=발짝)를 뜻한다. 따라서 발을 옮겨 디딜 때 발이 바닥에 닿아서 나는 소리는 '발자국 소리'가 아니라 '발소리'라고 해야 바른 표현이다.

"내가 막 골목으로 접어들어 조금 걸어왔을 때 뒤에서 서두르는 듯한 발소리가 들렸다" "시인은 배추흰나비와 밀잠자리의 늦잠을 지켜주기 위해 발소리를 죽인 채 살금살금 그 곁을 떠났다" "저것은 아버지의 발소리다"처럼 써야 한다.

최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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