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훈 교수, 조정래의 '아리랑' 근거 비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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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훈(55.서울대 경제학과) 교수가 소설가 조정래(64)씨의 역사소설 '아리랑'(전12권)의 역사적 근거를 비판하고 나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이 교수는 29일 출간될 뉴라이트 기관지 '시대정신'(2007 여름호)에 '광기 서린 증오의 역사소설가 조정래-대하소설 '아리랑'을 중심으로'란 글을 실었다.

'태백산맥'(전10권)의 저자이기도 한 조씨는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진보 성향의 소설가. '아리랑'은 1904~45년간 식민지 시기를 배경으로, 일제의 침략.수탈과 그에 맞선 우리 민족의 수난.저항 과정 등을 장대하게 그린 대하소설이다. '아리랑'은 올해초 100쇄(330만부)를 돌파했다.

한국 경제사를 전공한 이 교수는 뉴라이트 교과서포럼의 공동대표이자, '식민지 근대화론'의 논리를 개발해 온 낙성대연구소 소장이다.

이 교수는 먼저 '아리랑'에 묘사된 '조선경찰령'의 역사적 사실 여부를 따졌다. 소설에는 지주를 크게 다치게 한 차갑수라는 농민을 김제경찰서 죽산주재소장이 마을 당산나무에 결박하고는 '조선경찰령'에 따라 즉결 총살한 것으로 돼있다. 이와 관련 이 교수는 "소설은 토지조사사업 전 기간에 걸쳐 이런 사례가 전국적으로 4000여 건이나 되었다고 했지만, '조선경찰령'따위의 법령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아리랑'의 주무대인 김제평야가 소설에서처럼 원래부터 비옥한 곡창지대가 아니라 황무지였다는 주장도 내놨다. 그는 "1910년대까지 곳곳에 갈대가 무성했던 황량한 들판이 오늘과 같은 풍요로운 곡창지대로 변한 것은 식민지기에 걸친 수리사업 때문이었다"면서 "김제평야 일대는 한국 근대 수리사업의 발상지"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또 1944년 지시마(千島) 비행장공사 당시 조선인 노무자 1000명이 몰살당했다는 내용은 '아리랑'에서 가장 참혹한 장면으로 묘사되고 있지만, 그와 같은 학살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일제하 식민지기는 수난과 모멸의 시대였지만, 새로운 학습과 성취의 시대이기도 했다"고 끝을 맺었다.

조정래 작가의 반론을 듣기 위해 전화를 했다. 작가 측은 "조 선생님이 지방에 내려가 다른 글을 쓰고 있다"며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얘기를 쓴 적이 없다"는 작가의 반론을 대신 전했다. 작가 측은 또 "'김제군사'만 봐도 장례식까지 허가받고 해야했던 '조선경찰령'이야기가 다 나오고, 김제 지역엔 백제시대부터 '벽골제'라는 국내 최대의 수리시설이 있던 기름진 곡창지대였다"는 반론도 덧붙였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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