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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해외칼럼

일본은 '제로금리'를 버려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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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일본의 초저금리 정책은 1990년대 경제 거품이 꺼지면서 시장에 유동성을 주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시작됐다. 그러나 이 정책은 투기성이 매우 높은 '엔 캐리 트레이드'를 불러왔다. 엔 캐리 트레이드란 투자자들이 일본으로부터 금리가 낮은 엔화를 빌린 뒤 달러 등 고금리 통화나 자산에 투자해 차익을 남기는 국제 금융거래를 말한다.

엔 캐리 트레이드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엔 캐리 투자자가 엔화를 달러로 바꾸면서 엔화의 가치를 더 떨어뜨리고, 달러화의 가치를 더 올리게 된다는 것이다. 둘째, 이것은 자산 가격 인플레이션을 일으키면서 글로벌 자산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킨다.

달러화에 대한 엔화의 평가절하는 미국의 대일 무역적자를 지속시켰다.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이 일본과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자국의 환율을 낮게 책정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기도 했다. 중국도 예외가 아니다. 이 때문에 중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의 2대 경제가 낮은 환율을 고정해 놓는 바람에 다른 국가에선 일자리가 줄고 성장이 멈췄다.

엔 캐리 트레이드를 위해 일본에서 나온 돈은 높은 수익을 좇아 다른 나라의 금융시장으로 들어갔다. 미국에서는 연방준비은행(FRB)이 이 때문에 애를 먹고 있다. FRB는 수요 증가를 낮추고, 인플레이션을 피하기 위해 주택가격 거품을 잡으려 노력해 왔다. 그러나 엔 캐리 트레이드는 이런 정책을 방해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엔 캐리 트레이드가 '위험한 조합'으로 금융시장의 불균형을 일으키고, 세계 경제를 왜곡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캐리 트레이더들은 낮은 금리의 엔화를 차입해 달러화나 다른 고금리 통화에 투자한다. 캐리 트레이더는 일본에서 단기로 돈을 빌리지만 제3국에는 장기 투자를 한다. 문제는 엔화가 갑자기 치솟고 캐리 트레이드가 일시에 청산될 경우에 심각해진다. 갑자기 엔화 가치가 높아지면 캐리 트레이드 환율 손실이 생기고, 투자자들은 미국시장의 투자금을 환수해 일본에 갚으려 할 것이다. 세계 곳곳에서 이 같은 현상이 일어나면 세계시장이 흔들릴 우려가 있다

캐리 트레이드의 위험성도 문제지만 초저금리 정책은 일본에도 좋지 않다. 초저금리는 일본의 가계에도 영향을 미쳐 소비를 얼어붙게 할 수 있다. 소비가 약화되면 엔화의 약세로 인해 수출로 얻는 이익보다 손해가 더 커질 수 있다. 높아진 금리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수익이 저축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큰 경우, 높아진 금리는 소비를 촉진할 수 있다. 급속도로 인구가 고령화되고 있는 일본은 특히 더 그럴 수 있다. 현재의 저금리는 소득에 대한 불안심리를 조장할 수 있는 데 반해 금리를 올리면 소비자들이 자신감을 갖고 지출을 늘릴 가능성이 크다.

금리를 올리는 것은 재정 확대의 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일본은 많은 공공 부채를 안고 있기 때문에 금리가 오르면 이 부채에 대한 이자 지출이 늘어난다. 그러면 국채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 가계 부문의 수입이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초저금리 정책은 일본의 거품 경제가 꺼진 이후 정당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일본은 이미 오래전에 안정을 되찾았다. 지금 이 정책은 오히려 국제 금융시장을 불안하게 하고, 일본 내수시장도 침체에 빠뜨려 오히려 번영을 지체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제는 일본이 단호히 초저금리 정책을 버릴 때가 됐다는 뜻이다.

토머스 팔리 미·중 경제안보 리뷰 위원회 수석 이코노미스트
정리=이은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