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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군자리에서 오거스타까지 30. 조지 데커 사령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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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내친 김에 골프 장비 이야기를 좀 해보자.

여느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골프의 용품도 풍요로워지는 삶과 함께 발전했다. 골프는 다른 스포츠에 비해 많은 장비가 필요하다. 라운드에 필요한 14개 클럽 외에도 신발.장갑.모자.의류.가방.우산에 이르기까지-. 가장 많은 종류의 장비가 필요한 운동이 바로 골프가 아닌가 싶다.

내가 골프에 입문했을 때의 장비 수준은 한마디로 열악했다. 국산 클럽은 전혀 없었다. 골프화도 가죽구두에 쇠못으로 징을 박은 것이었다. 마치 말발굽처럼 8~9개의 쇠못을 박은 골프화였다.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국내 골퍼들은 그런 신발을 신었다. 그러다가 조지 데커 장군이 주한미군사령관으로 한국에 오면서 사정이 나아졌다. 데커 사령관은 핸디캡3 정도의 훌륭한 골퍼였다. 골프를 무척 좋아했던 그는 58년에 신설된 한국오픈에 주한미군 장병을 출전시켰다. 제2회, 제3회 한국오픈 우승자인 오빌 무디 상사는 미국으로 돌아가 69년 US오픈에서 정상에 오르는 등 PGA 투어에서 활약했다.

데커 사령관은 한국 골퍼들이 미8군에서 용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마침 김복만 프로가 미8군 골프장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나를 비롯한 골퍼들은 필요한 용품을 거기서 구했다. 처음 보는 골프용품이 너무 많았다. 미8군 프로숍은 그야말로 딴세상이었다.

그곳에서 염가로 용품을 살 수는 있었지만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아 어쩌다 신발을 하나 구입하면 정말 아껴 신었다. 지금은 공을 잘 치는 프로에게 용품업체에서 무료로 골프용품을 대주는 세상이니 얼마나 좋은가.

골프채도 우드는 감나무 일색이었다. 감나무클럽은 타구 때 손에 전해지는 감각이 좋았다. 하지만 무게를 줄이기 어려워 헤드가 작고 반발력이 떨어져 비거리가 많이 나지 않았다. 드라이버 등을 '우드'라고 부르는 이유가 나무로 만든 헤드를 사용하는 클럽이기 때문이다. '황금곰' 잭 니클로스가 감나무채로 300야드를 날리는 괴력을 발휘했기 때문에 미국무대에서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골프클럽시장은 77년 테일러메이드사가 알루미늄 합금으로 만든 버너라는 '메탈우드'를 만들면서 급변했다. 메탈우드는 90년대 초 캘러웨이사가 '빅버사'라는 브랜드의 티타늄 드라이버를 개발하면서 또 한 번 변신했으며, 그 뒤부터 헤드가 점점 커졌다. 요즘엔 헤드가 460CC나 되는 클럽도 나왔다.

이와관련, 확실히 해두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골퍼들 사이에서는 슬라이스를 고치지 못한 고 이병철 삼성 회장이 클럽헤드를 깎아서 사용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이 회장은 '케네 스미스'라는 미국산 수제품을 썼다. 클럽의 라이각을 조절, 훅이 나도록 제작한 특수클럽을 사용했기 때문에 그런 말이 나돌지 않았나 싶다.

한장상 KPGA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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