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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 국립조선극장 창립60돌|이성만리서 거둔 찬란한"예술승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조국과 단절된 채 아득한 이국 타향에서 강제이주까지 당했던 구 소련지역 한인동포들의 아픈 가슴에 민족혼의 불씨를 지펴온 카자흐스탄국립조선극장이 9월1일 창립60주년 기념식을 갖는다. 현재 중앙아시아지역 카자흐스탄의 수도 알마아타를 중심으로 연간 300일 이상의 놀랍도록 의욕적인 공연활동을 펼치고 있는 조선극장이 창설된 것은 1932년 블라디보스토크의 신한 촌에서였다.…○
극심한 재정난과 강제이주정책 때문에 크슬오르다·우스토베 등지를 전전하다 68년 알마아타에 정착하는 우여곡절 속에서도 매년 5∼6개월씩 한인 집단거주지역을 돌며『흥부전』 『춘향전』『심청전』등 민족고전극과 재소동포들의 생활상을 그린 현대극 및 셰익스피어·고골리 등의 세계명작들을 바탕으로 한 연극들을 공연해 소수민족으로서 겪어야하는 설움과 한을 달래 왔다. 그간 이들이 무대에 올린 연극만도 무려 2백 편이 된다.
지난해 내한공연을 했던 이 극장의 극장장겸 총 예술감독 김 블라디미르씨는『자유로운 이동이 금지돼 한인동포들이 서로 헤어진 가족과 친척들을 만날 수 없던 시절에는 유랑극단처럼 이 마을 저 마을로 떠돌 수 있었던 조선극장 배우들이 끊겼던 인연들을 소식으로나마 맺어주는 역할도 했다』고 말했다. 따라서 동포농민들이 기막힌 가난 속에서도 한줌씩 낟알을 모아 이들을 먹여 살렸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극장일지는 배우들 스스로 주머니를 털어 만든 무대장치며 소도구를 자신들의 등으로 져 나르는가 하면, 한 겨울 불도 지피지 못한 냉방에서 매일 8시간씩 연습하는 등의 헌신적 열정과 단결된 모습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조선극장은 이런 노력이 있었기에 온갖 난관을 뚫고 조국 남북한을 통틀어도 유례없이 긴 60년의 극장사를 기록하게 됐지만 구 소련전역의 폭등하는 물가 때문에 조선극장은 창단이래「최대의 위기」를 맞고있다. 연극단 40명과 가무단 40명 등 1백28명으로 구성된 조선극장은 아직까지 독립된 자체극장이 없어 충분히 연습·공연하기 어려운데다 엄청나게 치솟는 교통비·숙박비 때문에 종전처럼 자유로이 한인 집단거주지역들을 찾아다닐 수 없게됐다는 것이 김 블라디미르씨의 하소연.
91년 조선극장과 자매 결연한 서울의 국립극장이 조선극장배우들을 초청하는 등의 교류가 시작되자 조선극장 관계자들은『우리 극장이 마침내 조국을 찾았으니 이국 땅에 버려진 고아신세를 면하게 된 셈』이라며 감격스러워 했다.
국립극장은 구 소련지역 한인들, 특히 2∼3세들에게 우리말과 풍습 및 문화예술을 좀더 널리 파급시켜 민족동질성을 심어주고자 지난해 3명의 조선극장배우들을 초청한데 이어 올해에도5명의 배우·안무가·작곡가를 초청해 연수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또 국립극장 김진무 극장 장이 조선극장 창립6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조선극장의 현황과 문제점들을 직접 확인할 예정이어서 장차 국립극장이 조선극장을 좀더 본격적·효과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이 뚜렷해 질 것으로 보인다. 국립극장이 조선극장과 인연을 갖기 전까지 조선극장은 남한과 거의 단절된 채 북한의 일방적 영향을 받아 전체적으로 배우들의 말씨·노래·춤·의상 등에 북한 공연예술의 분위기가 매우 짙게 배어있다.
한편 환갑을 맞은 조선극장은 기념식과 축하연 외에『견우와 직녀』『강제이주열차 37』등의 특별공연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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