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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야구 기 살린 '헐크 팬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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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팬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팬티 바람으로 운동장에 나온 이만수 코치가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다. 26일 관중이 꽉 찼던 문학야구장에는 27일에도 2만8825명이 몰렸다. [인천=뉴시스]

"영화 '패치 아담스' 봤어요?" 프로야구 SK의 이만수 코치가 영화 얘기를 꺼냈다.

"의사 아담스(로빈 윌리엄스)가 난치병 어린이를 위해 스펀지 엉덩이가 붙어 있는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어요. 그러고는 이러잖아요."

이 코치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엉덩이를 흔들어 보였다. "문학야구장 같은 훌륭한 경기장에 관중이 꽉 차면 정말 장관일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3만400석의 문학야구장이 2년 만에 꽉 찬 26일, KIA전 5회가 끝난 뒤 이 코치는 가짜 엉덩이가 있는 붉은색 사각팬티를 입고 나와 경기장을 돌았다. 바로 그가 얘기했던 영화 속 그 팬티였다. 이 코치는 "문학구장이 꽉 차면 팬티만 입고 운동장을 돌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그의 '팬티 쇼'에 인천 야구가 살아났다.

27일에도 문학경기장에는 2만8825명의 관중이 몰렸다. 연속 만원은 아니었지만 이전까지 평균 관중이 9110명에 불과했던 곳에 주말 이틀간 6만 명이 찾은 것이다. 이 코치는 "인간 이만수라면 팬티 쇼를 할 수 없지만 프로야구 코치 이만수이기 때문에 할 수 있다"며 '야구 코치 아담스'의 역할을 자임했다.

◆ 되살아난 인천의 구심(球心)=2000년 쌍방울이 SK에 매각되면서 야구단은 전주를 떠나 인천에 자리 잡았다. 삼미-청보-태평양의 전통을 이어받아 인천을 연고로 했던 현대는 같은 해 인천을 떠나 수원으로 홈구장을 옮겼다. 한국 야구의 선구자라는 자부심이 있던 인천의 야구 팬들은 오히려 야구 때문에 상처를 받았다. 그들에게 SK는 '내가 응원해야 할 우리 고장 팀'이 아니라 '전주를 떠나 온 유목민'같은 팀이었다. 2005년 SK는 좋은 성적으로 포스트시즌에 올랐다. 하지만 팬들은 경기장을 채워주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단 한 번도 만원이 된 적이 없었다.

경기장을 찾은 김태윤(30)씨는 "그동안 프랜차이즈 스타라고 내세울 만한 선수가 없었다"며 "그러나 오늘을 계기로 더 많은 팬이 야구장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코치가 '패치 아담스'를 거론한 것도 'SK를 인천의 팀으로 받아들여 달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 긴장을 풀어주는 수다쟁이 아담스=이 코치가 '팬티 쇼'를 벌이기 전, 연타석 3점 홈런을 날린 이진영은 "김성근 감독님은 선수들을 긴장하게 하고, 이 코치님은 긴장을 풀어주는 존재"라고 말했다. 이 코치가 SK에 부임할 때 일부에서는 "시스템을 중시하는 김 감독의 관리 야구와 이 코치의 자율적인 스타일이 충돌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나 선수들은 오히려 '더 잘된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 김 감독은 "내가 조이는 사람이라면, 이 코치는 풀어주는 사람"이라며 껄껄 웃었다.

인천=강인식.장주영 기자

◆ 패치 아담스=불행한 가정환경에서 자라나 자살 미수로 정신병원에 들어간 헌터 아담스(로빈 윌리엄스)가 다른 환자로부터 영감을 얻어 의사가 되고 사람들의 몸과 마음의 상처를 치유한다는 내용의 영화다. 아담스는 의술뿐 아니라 광대처럼 분장하는 등 웃음으로 환자를 치료한다. 별명인 패치(patch)는 반창고라는 뜻 외에도 광대라는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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