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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지리산… 그 매력, 그땐 진정 몰랐었네

중앙일보

입력

힘내라, 열심히 살라고 격려하는 소리만 넘치는 서울. 이제 사람들은 그런 말로는 힘이 솟지 않는다. 일상에 진절머리가 난 도시인에게 필요한 것은 ‘힘내지 않아도 괜찮은 곳’으로의 여행. 아는 사람이라고는 없는 고요한 곳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갖는 것. 그러기에 딱 좋은 곳이 ‘지리산’이다.

지리산하면 40대들의 등산 코스가 떠오른다. 어린 시절 주말여행 떠나자는 부모의 손에 이끌려 억지로 올랐던 노고단 바래봉에서의 힘든 기억도 스쳐간다. 교통이 불편하고 편의 시설이 전무한 지리산은 특히 20대 연인들에겐 불모지로 느껴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부담스럽게 화려한 청담동의 카페와 홍대앞의 눈부신 클럽에 슬슬 지쳐가는 당신에게는 지리산은 불모지가 아니라 신세계로 보일지 또 아는가. 5월의 아름다운 꽃바람이 불어도 끝없는 고요함에 적적하고 쓸쓸함마저 느껴지는 지리산. 정신없이 달려온 도시인들의 지난날을 훌훌 털어버리기에 그만이다. 사시사철 가족여행 단골 추천지라는 선입견과 함께 솔로들에게 이동 거리만큼 멀게 느껴졌던 낯설음을 뒤로 하면 새로운 지리산이 보인다.

▶꽃바람 맞고 가는 길

대중교통은 권하고 싶지 않다. KTX에서 무궁화호, 그리고 시내버스까지 갈아타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도착한다고 해도 주변을 돌아다닐 만한 교통 수단이 없다. 택시도 찾아보기 힘들다. 자동차로는 서울에서 구례군까지 약 5시간 걸린다. 금요일 오후에 출발해 휴게소를 한군데도 들르지 않으면 4시간 반 정도. 가는 길에 도로 표지판이 잘 구비돼 있어 혼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다. 국도로 들어가기 전 전주 시내를 통과할 때도 직선으로 달리면 된다. 시원한 봄바람 맞으며 신록이 우거진 드라이브 코스를 달리는 경험은 지리산 가는 길의 백미 중 하나다. 밤재터널을 지나 산동면으로 들어가는 길을 주의할 것. 생각보다 과속 카메라가 촘촘하게 설치돼 있으므로 기분 내키는 대로 가속 페달을 밟다가는 기름값에 버금가는 과태료를 물게 된다.

※서울에서 가는 길

◇호남고속도로→전주IC→남원춘향터널출구→>구례방향(19번 국도)→밤재터널→산동→지리산온천(310㎞)

◇경부고속도로→대전-통영간고속도로→함양IC→남원IC→구례방향(19번 국도)→밤재터널→지리산온천(310㎞)

※다른 지역에서 가는 길

◇광주 : 88고속도로→남원IC(좌회전)→구례방향(19번 국도)→밤재터널→산동→지리산온천(60㎞)

◇대구 : 88고속도로→남원IC(좌회전)→구례방향(19번 국도)→밤재터널→산동→지리산온천(150㎞)

◇부산A : 남해고속도로→하동IC→하동읍→구례방향(19번 국도)→화개→19번국도→온천(산동)IC→지리산온천(200㎞)

◇부산B : 남해고속도로→서순천IC→7번국도→19번 국도(구례.남원 방향)→온천(산동)IC →지리산온천(200㎞)

▶푸짐한 남도 밥상

당골식당 주인아저씨

이곳 지리산온천이 위치한 전남 구례군 일대의 음식은 정말 환상적이다. 불편한 교통과 어설픈 숙소, 편의시설 부족에 대한 불만을 모두 잠재울 정도다. 남도 음식의 명성이야 익히 들어온 것이지만 그 맛이 어느 정도인지는 먹어본 사람만이 안다. 방법은 간단하다. 주변을 둘러보다 아무 곳이나 들어가서 먹어보면 된다. 5000원짜리 백반을 시켜도 기본 반찬이 10가지나 나온다. 사소한 나물 무침 하나하나가 혀끝에 잔잔한 감동을 준다. 아침에는 섬진강 제첩국이나 다슬기국을 먹고 점심에는 지리산 화엄사 인근에서 사찰식 대통밥을, 저녁에는 흙돼지구이나 닭구이를 한상 푸짐하게 먹는 코스를 추천한다.

☞‘당골식당’의 닭구이가 맛있다. 관광객들에게 유명한 곳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단골 명소이니 맛과 양, 서비스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듯. 주문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포동포동한 닭을 잡기 시작한다. 닭고기 육회도 함께 내오는데, 한번쯤 시도해볼 만 하다. 고기는 숯불에 구운 다음 직접 양봉해서 땄다는 꿀에 찍어 먹는데, 입안에서 살며시 녹는 맛이 그 자체로 감동이다. 텃밭에서 방금 캐온 나물과 상추의 풀내음은 아무리 고기를 많이 먹어도 깔끔한 여운이 남도록 입안을 헹궈준다. 후식으로 내오는 차가운 산수유차도 일품이다. 닭구이 외에도 멧돼지.흑염소.오리 등을 맛볼 수 있다. 아는 사람만 찾아갈 수 있는 산 속에 위치하고 있어 식당 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데리러와달라고 하면 된다. 061-783-1689.

▶볼거리 만발

화엄사 연등제

화엄사.노고단.바래봉.쌍계사.피아골…. 지리산하면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단어들이다. 그러나 이 모든 명소를 다 둘러보고, 지리산 정상에 반드시 올라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릴 필요는 없다. 차로 갈 수 있는 곳까지 가서 적당히 즐거운 만큼 걷고 쉬다 오면 된다. 5월의 지리산 화엄사는 연등제로 한창이다. 엷은 분홍빛의 연등이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는 곳에서 사진을 찍으면 화장과 조명 없이도 충분히 예쁘게 나올 수 있다.

노고단까지는 차로 이동할 수 있다. 여기서부터 바래봉까지는 걸어가야 하지만 등산이 버겁다면 과감히 포기하고 차를 몰아 천은사(泉隱寺)로 간다. ‘샘물이 숨어버렸다’는 뜻의 천은사는 사시사철 사진작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사찰. 인근 나무 그늘에 차를 세우고 의자를 끝까지 뒤로 젖힌 다음 발을 위로 뻗고 한 두시간쯤 낮잠을 자보는 것도 좋다. 사찰 옆 저수지에서 불어오는 가벼운 5월의 꽃바람에 도시에서의 불면증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산이 저기에 있으니 올라야한다’는 목표의식에서 잠시 벗어난다면, 지리산의 곳곳에서 숨은 매력을 찾을 수 있다. 화엄사도 노고단도 내 맘대로 즐기면 그만이다.

▶풀내음 풍기는 잠자리

지리산온천랜드 노천탕

산동면에 있는 지리산 온천에 도착하면 주변엔 괴상하고 기이한 모습의 리조트.모텔들이 있다. 90년대 초반 혹은 그보다 훨씬 전에 세워져 페인트가 다 벗겨지고 실내는 어두컴컴하다. 중학교 수학여행때 단체로 묵었던 숙소를 생각하면 된다. 여름 성수기에만 관광객이 몰리기 때문에 시설 투자가 안된 탓일 것이다. 그러나 어찌나 청소를 열심히 했는지 장판은 반짝반짝 윤이 나고 빛바랜 이불에서는 섬유유연제 내음이 묻어난다.

‘호텔’이라고 써있어도 일반 호텔을 생각하면 안된다. 칫솔.비누.샴푸.로션 등은 미리 챙겨가야한다. 부족한 것 투성이인 이곳 숙소에도 매력은 있다. 창문을 활짝 열어 놓으면 은은한 달빛과 함께 5월의 풀내음이 솔솔 풍겨온다. 자동차 소음이 전혀 들리지 않는다는 것도 큰 장점 중 하나. 새벽 2시쯤 숙소를 나와 캔맥주 하나 사들고 시골길을 걸어보는 것도 좋다.

♨산동면 한 가운데 위치한 ‘지리산온천랜드’는 거대한 노천온천을 끼고 있어 여행에 지친 심신의 피로를 풀겸 한번쯤 들러볼만 하다. 숙박비는 비성수기 기준으로 5만원. 10인실도 15만 4000원까지 할인 가능하다. 인근 모텔은 1박에 평균 3만원, 민박은 2만원대. 061-783-2900. www.spaland.co.kr

♣지리산 여행에서 이것만은 꼭!

산수유차

1. 뽕나무 열매로 빚은 술 마셔보기

2. 심야에 맥주 마시며 혼자 걸어보기(편의점은 딱 한군데, 지리산온천 입구에 있음)

3. 새벽에 수영하기(수영복과 수영모자 2000원에 대여 가능)

4. 화엄사 들러 연등제 구경하기

5. 노고단 오르다 자장면 먹기(노고단 휴게소)

6. 천은사 들러 팥빙수 먹고 저수지 옆에서 낮잠 자기(팥빙수 5000원, 산수유 차도 맛있음)

7. 지리산 노천 온천에 들러 휴식과 피로 풀기(세면도구 꼭 챙겨갈 것)

8. 돌아오는 길에 천안에서 호두과자 사먹기

이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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