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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의 묘지(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66년 아시아 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 박상호감독의 영화 『비무장지대』는 비무장지대 안에서 길을 잃은 두 남녀 어린이의 행적을 통해 분단의 비극을 조명한 작품이다. 이 영화속에서 남자어린이는 전사자의 장비들을 온몸에 훈장처럼 달고 전쟁놀이 하듯 신이 나서 돌아다니다가 여자 어린이를 상대로 땅뺏기 놀이를 벌인다. 땅위에 줄을 긋고 나서 말한다.
『이 줄을 넘어다니지 않기다. 이 줄을 넘으면 총쏘기야. 알았지?』
『이게 뭔데?』
『땅 갈라논거야.』
『그럼 저긴 누구 땅이고,여긴 누구 땅이지?』
줄을 넘으면 총을 쏘도록 되어 있고 「여긴 누구 땅이고,저긴 누구 땅인지」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것,그것이 바로 비무장지대다. 53년 7월22일 군사분계선이 확정됨에 따라 그 선을 중심으로 남북 2㎞에 걸쳐 설정된 비무장지대는 그 이후 쌍방의 충돌을 피하기 위한 완충지대로서의 구실을 해왔다.
「희귀식물의 보고」라든가 「민물고기의 낙원」따위의 표현으로서 생태계 보전지역으로 지정할만한 가치가 충분하다는 견해도 제기되고 있지만,다른 한편으로는 도발행위,혹은 위반사례가 수십만건에 달한다고 서로가 주장할만큼 군사적 긴장상태도 끊이지 않았다. 비무장지대는 「전쟁속의 평화」와 「평화속의 전쟁」이라는 두 얼굴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이 지역이 고향인 사람들에게는 그곳이 눈앞에 보이는 바로 지척임에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낯선 곳,먼 땅일 수 밖에 없다. 통일이 되기까지는 찾아갈수도 없는 곳인 탓이다. 하지만 부모와 혈육들을 그곳에 묻어둔 사람들에게는 그 묘소를 단 한번만이라도 찾아보는 것이 간절한 소망이다.
군사분계선 이남지역 2㎞ 구간에는 약5백기의 묘소가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정부가 휴전 40주년을 맞아 비무장지대내 조상의 묘 찾아주기 운동을 벌이기로한 것은 분단비극의 작은 한가닥이나마 풀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깊다. 박두진의 시 「묘지송」으로 우선 망자들의 넋을 달래보자.
「북망이래도 금잔디 기름진데 동그란 무덤들 외롭지 않어이./무덤속 어둠에 하이얀 촉루가 빛나리. 향기로운 주검의 내도 풍기리.」<정규웅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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