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침구사가 사라진다|현대 한의학에 밀려 백23명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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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전통침구사가 사라지고있다.
경험의학인 한방에서 치료의 으뜸순위는「1침2구3약」.
그러나 속칭 침쟁이·뜸쟁이로 불리며 침과 뜸(구)으로 서민들의 건강을 다루던 침구사들이 제도권의학에 밀려 맥이 끊기고 있다.
보사부에 따르면 침구사는 62년 의료법개정으로 침구 사 자격증제도가 폐지될 때까지만 해도 5백여명에 이르렀으나 현재는 1백23명에 불과하다.
이들 침구사 가운데 전국 최 연소자는 광주시 기초의원으로 활약하고 있는 김병조씨(58)로 나머지 대부분은 7O세 이상의 노인들이어서 이들이 모두 세상을 떠나면 침구사가 이 땅에서 영영 사라지게 되는 셈이다.
물론 한의사들도 침과 뜸을 하고 있지만 벌이가 시원치 않은 침구보다는 첩 약과 보약에 치중, 침구가 자칫 한방에서 낙후되지 않을까 우려되고 있다. 한의사들이 시술하는 침구는 의료보험이 적용되나 보험수가가 침의 경우 하루 3백20원·4백80원이고 뜸은 하루 3백80원·5백30원이니 만큼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는 게 당연한지 모른다.
이처럼 한방에서 개업한의사들의「홀대」를 받는 침구의 빈자리를 메우는데「유사의료업자」로 분류되고 있는 침구 사들이 나름대로 한몫을 했으나 보건의료정책에서 소외돼 대가 끊길 위기에 놓여있는 것.
이에 비해 최근 수년간 고려 수지침 등 간단한 침 사용법을 익혀 급체를 푸는 등 실생활에 활용하는 가정주부·학생들이 크게 늘어나 국내의 아마추어 침 인구는 20만∼40만 명이나 된다.
침이 이처럼 대중에 인기를 모으자 젊은「무자격 침술 사」들이 주축이 돼 국회 등 각계 각층을 상대로 로비를 펴 침구사제도의부활을 추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노인 침술 사들이 맥을 잇기 위해 작은 몸부림을 시작하고 있다.
즉 우리나라에서는 대한한의사회만 회원단체로 가입해있던 세계침구학회연합회(WFAS)에 사단법인「대한침구 사 협회」(회장 신태호)가 지난 5월 회원단체로 들어가고 중국 천율침구학회와 자매결연하면서 자신감을 얻게 된 것.
이름만 대도 곧 알만한 국내외 저명인사들에게 침 뜸 치료를 40년 간 펴온 침구 사 김남수씨(77)는『식물도 대를 이어가는데 우리는 전통의 맥을 끊는 것 같아 소위「쟁이」로서 맘 편히 눈을 감고 죽을 수 없는 심정』이라고 한탄했다.
지난 87년 침구 사로서는 국내에서 처음으로『뜸의 이론과 실제』(5백34쪽)라는 관련서적을 내기도 했던 그는「침쟁이」「뜸쟁이」라는 세칭에 아랑 곳 하지 않고 현직 고위 정치인 김모씨와 10·26당시의 주모자 김모씨 등 거물급인사들을 고객으로 하는 등 팔순을 눈앞에 두고 마지막장인정신을 불태우고 있다.
대한침구 사 협회는 ▲세계보건기구(WHO)가 각 국의 국민의료비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권장하고있는 1차 진료의 수단으로 침과 뜸을 활용한다는 측면 ▲전통의 맥을 잇는다는 당위성을 들어 침구 사 법의 의원입법, 침구사제도의 부활을 꾀하고 있다.
그러나 보사부 등 정부는 의료인력의 과잉을 들어 침구사제도의 부활에 반대하는 입장이어서 앞으로 머지않아 침구사가 사라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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