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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지역 이념 성향은 '딴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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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 지역별 이념 성향 살펴보니
햇볕정책은 호남에서만 통해
TK - PK 이념차 5년 전보다 줄어

'호남+충청 연대론''호남+충청 환상(幻想)론''영남 후보론''영남 분열론'.

연말 대선을 앞둔 정치권에선 부쩍 호남.충청.영남, 세 지역이 자주 거론된다. 실제 이들 지역 민심은 어떨까. 이들 지역의 표를 얻는데 정책과 이념이 영향을 미칠까. 숭실대 강원택 교수는 "과거엔 이념과 지역이 결합한 형태가 뚜렷하게 나타난 편이었지만 이번 조사에선 호남에서의 일부 이슈를 제외하곤 이념적 차별성이 크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이 말대로라면 지역 구도에 이념 변수가 영향을 미치지 않게 될 공산이 크다. 다만 유일한 예외가 호남이다. 그것도 대북 정책이라는 제한된 이슈에서 그렇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둘러싼 주자들의 이념 성향이 호남 유권자의 선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얘기다.

◆ 햇볕정책 견고한 지지 보낸 호남=호남의 이념 성향은 중도(5.1)다. 그러나 전 지역을 통틀어 보면 가장 왼쪽에 있다. 그만큼 다른 지역이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호남의 경우 대북 안보 영역을 제외한 나머지 4개 영역에선 중도보수였다. 대북 안보 영역은 중도 진보(4.6)성향을 보였다. 대구.경북 지역이 가장 보수적이었고(5.7), 부산.경남 지역(5.5)이 뒤를 이었다.

2002년엔 이렇지 않았다. 대북 지원 문제에 관한 한 당시 호남(4.2)은 오히려 같은 '서부 벨트'권인 충청(3.9).인천(이상 4.0)보다도'보수적'인 편이었다. 국민 평균치(4.1)보다도 오른편에 있었다.

5년 새 상황이 달라진 것이다. 서울시립대 임성학 교수는 이와 관련, "DJ의 상징인 햇볕정책에 대한 호남 유권자의 견고한 지지를 보여준다"며 "호남에 호소력을 가지려면 진보적인 대북 정책, 즉 햇볕정책에 대한 지지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북 안보 영역에서 호남 유권자와 비슷한 성향을 보이는 주자는 한나라당의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다(4.0). 호남 유권자에 비하면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는 다소 보수적(6.0)이고 범여권의 손학규 전 지사와 열린우리당 정동영.김근태 전 의장은 상당히 진보적이다(1.33).

◆ 가장 보수적인 충청=1997년과 2002년 대선에서 충청은 호남과 함께했고 승리했다. 이런 과거의 기억이 요즘 호남+충청 연대론의 근거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조사에서 충청은 가장 보수적인 것으로 드러났다(5.5). 호남과 가장 멀리 있다. 사안마다 이념성이 들쭉날쭉하다. 그렇다 보니 이념적으로 충청권과 유사한 후보가 두드러지지 않는다.

성신여대 서현진 교수는 "현재 충청은 이념적으로 별다른 차별성을 보이지 않고 있다"며 "이념과 연계된 이슈보다는 지역의 이해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정책 공약 등이 오히려 충청 민심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 영남의 분열 가능성=범여권은 영남의 분열 가능성에 주목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2년 대선 승리의 요인으로 꼽기도 했다. 2002년 조사에서 대구.경북(4.7)과 부산.경남(4.4)은 국민 전체(4.5)를 사이에 두고 미묘하게 엇갈리는 이념 성향을 보였다.

이번 조사에서 두 지역의 차이는 확 줄어들었다. 환경-개발 영역을 제외하고 나머지 4개 영역에서 양 지역의 이념 차는 0.1 안팎이었다.

강 교수는 "범여권 후보가 등장하면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라면서도 "이전에 비해 두 지역 간 이념적 차이가 줄어 둘을 분열시킬 이념적 이슈가 나타나기 어려워진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고정애 기자

■ 대선주자도 헷갈린 노 대통령 이념
'2 ~ 6.7점까지' 극과 극 평가
"하도 왔다갔다해서 …" 답변도

'반미주의' '좌파' '신자유주의' '신보수주의'….

노무현 대통령을 4년간 따라다닌 수식어다. 좌파와 신보수주의 같이 상반된 개념이 뒤섞여 있다.

그래서 일각에선 노 대통령의 성향을 두고 '시계추 이념'이란 말이 나온다. 뚜렷한 이념적 정체성 없이 사안에 따라 좌우를 오간다는 뜻이다.

대선 주자들의 인식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노 대통령의 이념 성향이 어디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주자들의 답변은 평균 4.5였다. 평균치로만 보면 대체로 중도진보(4~6)로 분류된다. 진보 성향의 주자는 노 대통령을 보수로, 보수 성향의 주자는 진보로 바라보는 경향도 뚜렷했다.

권영길.노회찬.심상정 의원 등 '민주노동당 트리오'는 노 대통령의 이념 지수를 6.7로 봤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7.0)에게 근접한 수치다. 노 대통령을 보수 정치인으로 보고 있다는 얘기다.

주류 운동권 출신인 열린우리당 김근태 전 의장도 노 대통령을 진보가 아니라고 봤다(5.0). 그러나 박근혜 전 대표는 노 대통령의 이념을 '진보적(2~3)'이라고 답변해 평가가 엇갈렸다.

범여권에서 중도 성향으로 알려진 정동영 전 의장과 김혁규 의원도 노 대통령을 진보적이라고 평가했다(3.0).

일부 대선 주자(이명박.손학규.천정배)는 아예 답을 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 범여권의 한 주자는 "하도 왔다갔다해 헷갈려서 딱히 어디다라고 말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 노 대통령은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부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타결에 이르기까지 좌우를 넘나드는 정책을 펴왔다.

2002년 조사 때 노 대통령은 가장 진보적인 후보(1.5)였다. 당시 노 대통령은 "내가 왼쪽으로 나온 건 한국 사회의 기준이 너무 오른쪽으로 가 있기 때문"이라며 "나는 스스로를 중도 성향으로 본다"고 했었다. 2004년 5월 연세대 강연에선 "합리적 보수, 따뜻한 보수, 별놈의 보수를 갖다 놔도 보수는 바꾸지 말자는 것"이라며 진보의 가치를 평가한 적도 있다. 지난해 3월엔 "나는 좌파 신자유주의"라고 말했다.

정강현 기자

■ 실제 설문 결과를 보니 … 자기 생각보다는
좀 더 왼쪽 이명박 좀 더 오른쪽 박근혜

대선 주자들이 스스로 매긴 이념 성향과 설문 결과 나타난 좌표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았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자신의 이념 위치를 7(보수 성향)에 뒀다. 그러나 설문 분석 결과는 6이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스스로 중도 보수인 6으로 평가했지만 실제론 보수 쪽으로 한 칸 이동한 7로 나타났다.

이 전 시장이 이 같은 차이를 보인 것은 대북 안보 분야의 전향적 답변 때문이다. 그는 이 분야에선 진보 쪽인 4에 위치했다. 이 전 시장 측 주호영 의원은 "기본적으로 이 전 시장의 성향은 중도보수"라며 "설문지에 표시할 때 6과 7 중 어느 쪽이 중도보수인가를 고민하다 비슷하다는 판단하에 7에 체크했다"고 설명했다.

박 전 대표의 보수성은 대북 안보, 국가-시장 영역에서의 입장 때문으로 보인다. 박 전 대표 측 유승민 의원은 "박 전 대표는 헌법에 있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키는 것이 중도보수라 생각하기 때문에 헌법의 원칙을 지키는 자신을 6으로 표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의 경우 5로 진단했지만 분석 결과(4.2)는 중도진보 쪽에 가까웠다. 그는 국가-시장 영역에선 보수에 가까운 실용 노선을, 대북 문제에선 매우 진보적인 노선을 견지했다.

열린우리당 정동영.김근태 전 의장과 김혁규 의원은 스스로 중도진보(4)라고 봤다. 그러나 분석 결과 정 전 의장과 김 의원은 국가-시장 영역과 세계화 영역에서 보수에 가까운 입장을 보여 자신들의 생각보다 다소 오른쪽(4.2, 4.3)으로 이동했다.

김 전 의장은 대북 안보 영역과 세계화 영역에서 진보적인 답변을 해 3으로 나왔다. 민주노동당 주자 세 명을 빼면 가장 진보적인 위치다.

주자들이 서로 상대방을 바라보는 시각도 흥미롭다.

상당수가 이 전 시장보다 박 전 대표를 보수적으로 봤다. 박 전 대표를 가장 보수 쪽인 10과 9로 매긴 주자가 각각 3명(권영길.정동영.김혁규, 원희룡.심상정.김근태)씩이었다. 이 전 시장은 박 전 대표를 8로 봤다. 이 전 시장에 대해선 10이라고 답한 주자가 1명(권영길), 9가 2명(심상정.김근태), 8이 3명(원희룡.정동영.김혁규)이었다.

자신을 4로 평가한 김근태 전 의장은 천 의원을 제외한 모든 범여권 후보들을 자신보다 보수적인 것으로 평가했다. 박 전 대표, 손 전 지사, 천.노 의원은 이 문항에 답변하지 않았다.

◆ 교수 출신 손학규 주관식 선호=과거와 달리 이번 조사에선 4지선다형에다 주관식 답변을 쓸 수 있도록 했다. 대선 주자별로 답변 스타일에 차이가 있었다. 이 전 시장은 대체로 간단명료했다. 한두 줄 설명을 덧붙이는 것으로 끝냈다.

박 전 대표는 상세하게 설명하는 스타일이었다. 자기 주장도 강했다. "추가 성장으로 새로 생기는 일자리 자체를 국민은 복지로 받아들인다" "민간 건설 업체가 경영 혁신으로 낮은 원가에 공급하는 걸 시장에서 벌 주는 체제가 돼선 곤란하다"는 표현도 썼다.

손 전 지사와 정 전 의장은 설명형에 가까웠다. 교수 출신인 손 전 지사는 특히 객관식은 꺼리고 주관식을 선호했다. 20개 문항 중 즉답하지 않은 게 6개나 됐다.

이가영 기자

◆ 조사.분석 연구진

강원택 교수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손병권 교수

(중앙대 국제관계학과)

임성학 교수

(서울시립대 국제관계학과)

서현진 교수

(성신여대 사회교육과)

가상준 교수

(단국대 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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