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출마포기」냉정한 압력/문창극 워싱턴특파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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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인기가 땅에 떨어진 부시대통령이 공화당 전당대회를 불과 2주 남겨놓고 재선출마를 포기하라는 압력을 여기저기서 받고 있다.
지난 주말 미국의 유수한 방송들은 부시의 출마포기 문제를 주요대담 프로의 주제로 삼았으며 월스트리트 저널·워싱턴포스트지 등 유력 일간지들도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취급하기 시작했다.
지난주 공화당의 본거지라고 할 캘리포니아주의 오렌지 카운티 레지스터지가 사설로 부시에게 재선출마를 포기하라는 촉구가 있은뒤 점차 부상되기 시작한 이 문제를 전국 언론들이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것이다.
CNN방송의 「일요일의 화제인물」 대담프로에는 유명한 보수주의 행동파가 나와 『부시는 스스로 역사의 인물로 들어갈 것을 선택하는 것이 당이나 나라를 위해 공헌하는 길』이라고 촉구했는가 하면 CBS방송의 대담프로에 나선 미 공공정책연구소의 파인즈소장은 『공화당은 부시를 체니국방장관이나 캠프 주택 및 도시개발장관 등 제3의 인물로 교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월스트리트저널지는 「단임이면 족하다」는 칼럼을 실어 눈길을 끌었다.
이 칼럼은 부시가 냉전체제를 자유진영의 승리로 마감했고 걸프전을 승리로 이끌어 냉전종식후의 미국입지를 확보한 것으로 그의 역사적 사명은 훌륭히 완수했다는 전제하에 부시가 재선이 된다해도 그의 나머지 4년임기는 군더더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재선출마포기 문제는 언론에서 뿐 아니라 공화당 선거운동 모임에서도 거론되었다.
지난 주말 일리노이주의 한 야외 모금파티에 참석한 부시는 청중으로부터 출마포기에 대한 신문들의 보도에 대해 질문을 받았다. 부시는 이 질문에 답변하지 않고 넘어갔으나 요즘 각 언론은 부시의 심정변화를 감지하는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러한 일들이 현직 대통령을 상대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미국인들이 무섭고 냉정한 사람들로 보인다. 대통령으로서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은 없지만 시대적 소명이 끝났으면 스스로 물러가라는 압력인 것이다.
그가 인기가 떨어졌다고는 하나 아직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는 현직대통령이며 전례를 볼때 재집권가능성이 높은데도 「물러가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부시 개인에게는 괴로운 일이겠지만 이런 점이 미국의 건전하고 강인한 정치풍토를 유지시켜주는 요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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