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산건설 오VT사/「복구비 백억」책임공방/신행주대교붕괴“떠넘기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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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주탑설계와 시공잘못” 벽산/“벽산측 설계변경때문” VT
신행주대교 붕괴사고에 대한 당국의 정밀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주시공업체인 벽산건설측과 콘크리트 사장교 부분의 설계·시공을 담당했던 오스트리아 보스판 테크닉(VT)사간에 책임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양측은 아직 사고원인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점을 감안,「자체조사를 통한 추정」이라는 단서를 붙이기는 했지만 서로 사고 원인이 상대방의 과실에서 비롯됐다는 식의 주장을 펴고 있어 주목된다.
이번 사고의 복구비가 최소한 1백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양측은 기술진을 총동원,「구사」 차원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사고원인을 찾아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인상이다.
벽산측은 사고당일에는 다리 중앙의 임시교각이 상판·사장재 등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주저앉으면서 사고가 일어난 것 같다고 추정했다가 다음날인 1일 하룻동안 자체조사를 벌여 이를 번복,주탑에 임시로 연결돼 있던 사장재가 상판에 떨어지면서 붕괴가 일어났다고 발표했다.
사장재를 묶어둔 강남쪽 주탑 상단의 지름 15㎝의 철제빔이 사장재의 무게를 못이겨 끊어지면서 1백50t의 사장재가 떨어져 콘크리트 상판이 붕괴돼 연쇄적으로 교각들이 무너졌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벽산측은 이런 주장의 근거로 임시교각의 기초부분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점외에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직접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콘크리트 사장재나 주탑에서 설계·시공의 잘못으로 사고가 났다」는 벽산측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VT사가 상당부분 사고의 책임을 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VT사는 콘크리트 사장교 구간인 3백m의 설계를 담당했을뿐 아니라 주탑과 사장재 공사의 시공 또한 VT사의 현지 법인인 VT코리아사가 벽산측으로부터 하청을 받아 작업중이었으며 지금까지 오스트리아인 기술진 2명이 현장에서 사장교의 기술자문을 해왔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벽산측은 『VT사측의 잘못이 드러나면 즉각 손해보상을 요구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VT사측은 『벽산측의 주장은 터무니 없는 가설』이라고 강한 불만을 표시하면서 『우리에게는 사고의 책임이 절대 없다』고 반박한다.
VT사의 한 관계자는 『벽산측의 설계변경 때문에 사고가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다』며 『자세한 내용은 조사가 끝난뒤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설계변경」의 의미가 현재까지 확실히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대충 「벽산측이 상판이나 교각 등 일부의 설계를 임의로 바꿔 시공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건설부측은 붕괴규모가 워낙 커 사고원인 조사 최종결과가 나오려면 앞으로 1∼2개월 이상 걸릴 것으로 보고 있어 양측의 공방은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건설부의 조사가 어느 한쪽의 주장대로 명백히 밝혀지면 문제가 없지만 복합적 원인이나 모호하게 발표될 경우 사고 책임을 놓고 양측간의 국제소송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높다.<이규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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