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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궁(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아득한 옛날부터 활은 어느 민족이나 다 공유했던 무기며 수렵도구였다. 지금도 선사시대의 유적을 발굴하면 으레 돌화살촉이 나온다.
우리나라에도 총이 들어온 조선시대말기까지 2천여년동안 활은 먼거리의 표적을 겨누는 대표적 무기였다. 그래서 고조선 또는 삼국시대의 기록을 보면 한민족이 활을 잘 쏠 뿐 아니라 활을 잘 만든다는 칭찬이 여러군데 나온다.
옛날 중국 사람들이 조선을 동이라고 한 것도 등에 큰 활을 메고 다닌다는 뜻에서 그렇게 불렀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나라의 활은 활장(궁간)이 짧은 단궁이었다. 중동의 터키에서부터 몽고·중국·조선에 분포하는 이 단궁은 주로 기마민족의 것이고 일본이나 서양의 활은 한길이 넘는 해양계의 활이었다. 활장이 긴 것은 연궁이어서 화살이 미치는 거리가 단궁에 비해 짧다.
이처럼 활과 인연이 깊은 우리 겨레의 역사에서 가장 활을 잘 쏜 명궁을 들라면 아마도 고주몽과 이성계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이규보의 동명왕기를 보면 주몽은 태어난지 얼마 안되어 벌써 말을 했는데,파리가 귀찮아 잠을 잘 수 없다고 활을 하나 만들어 달라고 한다음 그것을 쏘니 파리가 백발백중으로 잡혔다고 한다. 주몽이란 부여말로 「활을 잘 쏘는 사람」이란 뜻이다.
이성계도 신궁소리를 들을 만큼 활을 잘 쏘아 그에 대한 일화가 적지 않다. 고려 우왕4년 왜구가 황해도 해안을 침범하자 그는 조전원수로 출전,대우전 17발로 17명의 왜구를 명중시켜 물리쳤는데,싸움이 끝난후 이성계는 주위사람들에게 『이번에는 모두 적의 왼쪽 눈을 쏘았노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왜구의 시체를 살펴보니 아니나 다를까 모두 왼쪽 눈을 맞고 죽어 있었다.
그 명궁의 전통이 2일밤 바르셀로나에서 다시 한번 세계를 감탄케 했다. 양궁 여자개인전 결승에 한국의 두 명궁 조윤정·김수녕은 사이좋게 나란히 금메달과 은메달을 따냈다. 사대에 나선 본인들 심정은 오죽 조마조마 했을까마는 다른 결승전과 달리 느긋하게 지켜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고마운 일이다.
단체전에서도 좋은 성적 거두기를 빈다.<손기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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