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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남파 공작원과 경찰의 인연은 어디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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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용만(63.사진)씨가 1989년 문단 데뷔작인 단편 '은장도'를 개작한 장편 '칼날과 햇살'을 펴냈다.

소설은 남파 무장 공작원 배승태와 체포된 배승태를 담당했던 경찰서 정보과 형사 강동호 간의 갈등과 화해, 그리고 노년으로까지 이어지는 인연의 드라마를 그렸다.

경찰에 쫓겨 동료와 함께 산속으로 숨어든 배승태는 허기를 면하기 위해 외딴집으로 숨어들었다가 격투 끝에 두명의 어부에게 붙잡힌다. 허기를 다스리고 나자 쌓였던 피로와 한기가 몰려와 깜빡 잠이 들었다가 '봉변'을 당한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승태가 살인 기계로 훈련된 정예요원임을 감안하면 어부들의 몽둥이 찜질에 당했다는 점은 석연치 않다. 여러 정황도 배승태가 완력에 의해 붙잡힌 것이 아니라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 꿈과 현실의 경계에 놓인 일종의 무방비 상태에서 품고 있던 권총을 어부들에게 쏘지 않고 순순히 내놓은 것이라는 추정이 들어맞는다.

문제는 배승태가 자신은 자수할 의사가 없었고 체포됐을 뿐이라고 강변한다는 점이다. 자신에게 불리한데도 체포를 주장하는 배승태의 진실은 북한에 두고 온 가족, 굽힐 수 없었던 이념적 신념 때문이었음이 드러난다. 어부들에게 권총을 내주기 직전 배승태는 꿈속에서 어머니에게 나무팽이를 깎던 은장도를 내주고 있었다. 칼은 위험한 것이라는 꿈 속 어머니의 걱정에 현실의 배승태는 생존 도구인 '무기'를 남한 어부들에게 내놓은 것이다.

소설은 만연체처럼 등장인물들의 사연을 구구절절 따라간다. 때문에 군더더기 없는 이야기 구조를 기대했다가는 실망할 수 있다. 작가 스스로도 작품성이 의심스럽다고 걱정했다. 소설의 재미는 오히려 충청도 사투리처럼 유장하게 이어지는 시시콜콜함에 있다. 시시콜콜함은 때때로 무장공비의 출몰이 잦아 수시로 무장 예비군들이 소집되고, 아침에 멀쩡히 배를 타고 나갔던 어부들이 북한으로 끌려가 며칠동안 초대소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고 돌아오는 사례가 있었던 60년대적 현실을 포함하는 것이다.

작가 김씨는 60년대 초반부터 유신 직후까지 10년 가까이 경찰생활을 했다. 소설은 당시의 체험을 바탕으로 쓴 것이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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