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플레 현상 다시 나타나 꺼림칙”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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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호 21면

고미네 다카오(小峰隆夫) 도쿄대 법대 졸, 경제기획청 조사국장, 일본경제연구센터 주임연구원 겸 호세이 대학(대학원 정책과학연구과) 교수

일본 경제는 2002년 초부터 장기에 걸친 경기 확대기가 계속되고 있다.

전문가는 어떻게 보나

먼저 올해가 경기확대 국면 속에서 어떤 중요성을 갖고 있는지를 정리해볼 필요가 있다. 경기의 국면을 생각할 때는 그 패턴을 정리해두면 편리하다. 내가 항상 염두에 두는 것은 3단계의 경기전개 패턴이다.

1단계는 ‘수출에 의해 생산이 증가하는 단계’이고, 2단계는 ‘기업수익과 설비투자가 증가하는 단계’, 3단계는 ‘고용 및 임금이 개선돼 소비가 증가하는 단계’다. 일본의 경기는 대체로 이런 3단계를 거치며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2002년 이후 현 경기확대 국면을 이 패턴에 적용해보자. 2002년은 1단계였다. 수출이 크게 늘고 이를 계기로 생산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2003년부터는 제2단계에 들어갔다. 기업들의 수익이 급증하고 설비투자도 늘기 시작했다.

2004년은 이른바 ‘오도리바’(춤추는 장세라는 뜻으로 방향성을 가늠하기 힘든 상황)라고 불린 시기로 경기의 진행 속도가 꺾였다. 그리고 2005년부터는 마지막 3단계에 접어든 상태다. 기업의 고용과잉이 해소되고 고용시장이 크게 개선됐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해에도 마찬가지여서 노동시장은 완전히 ‘바이어스 마켓(buyer’s market)’에서 ‘셀러스 마켓(seller’s market)’으로 변했다.

이런 점만 보면 일본의 경기는 순조롭게 회복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엄연히 남아있다.

첫째, 국민 대다수는 “좀처럼 좋은 경기를 실감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는 임금이 오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1인당 임금은 1998년부터 2004년까지 연속해 떨어진 뒤(단 2000년은 미미하게 증가), 2005년에는 겨우 0.6% 늘어났다. 지난해에도 상승률이 좀처럼 올라가지 않고 0.3%에 그쳤다. 심지어 올 1분기(1~3월)는 전년 동기 대비 0.9%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소득이 늘지 않고 있는 것은 바꿔 말하면 경기상승의 혜택이 기업 내에 꽉 막혀 있어 가계부문으로 흘러가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소비도 둔화돼 경제는 수출과 기업의 설비투자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본 경제가 본격적인 상승국면으로 진입하기 위해선 임금이 오르고 국내총생산(GDP)의 60%를 차지하는 소비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둘째는 디플레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의 소비자물가지수는 2000년부터 2005년까지 6년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이 디플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본은행은 제로금리와 통화의 양적완화정책을 계속해왔다. 그 효과 덕분인지 2006년의 소비자물가는 0.1% 상승으로 전환했다. 그 뒤 제로금리, 양적완화정책도 해제됐다.

그런데 올 2월과 3월은 또다시 소비자물가가 마이너스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디플레의 향배는 여전히 불투명한 것이다. 디플레가 계속되면 금리도 비정상적으로 낮은 상태를 유지할 수밖에 없어, 임금 또한 올리기 힘든 상태가 계속될 것이다. 한마디로 일본의 경기는 일단 확대 국면이 이어지고는 있으나 여전히 매우 답답한 흐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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