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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살인 비율’ 한국, 미국의 2배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0호 13면

이혼숙려제도를 시범적으로 시행해보니 협의이혼을 신청한 뒤 취하하는 비율이 높아졌다고 한다. 이 제도를 운영하는 서울가정법원ㆍ대구지법ㆍ부산지법의 협의이혼 사건을 분석해보니 2004년 6%이던 이혼 취하 비율이 지난해 20%까지 올라갔다. 가족해체가 심각한 현실에서 긍정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가정의 달인 5월, 천륜을 저버리는 가족범죄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 경기도 포천에서 40대 남자가 만취상태에서 어머니를 둔기로 마구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됐고, 부산에서는 술에 취해 부탄가스를 흡입한 20대 남자가 어머니를 폭행해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가정폭력 소재의 영화 ‘우묵배미의 사랑’의 한 장면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 따르면 부부ㆍ부모ㆍ형제간에 발생하는 살인사건 비율이 전체 살인사건의 27%에 이른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지난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체 살인사건 중 14%가 가족 사이에서 발생했다. 인구 10만 명당 살인사건은 미국이 6명인 데 비해 한국은 2명 정도다. 살인사건 발생률은 미국의 3분의 1 수준이지만, 가족 살인의 비율이 한국이 두 배라는 사실은 범죄학적으로 흥미롭다.

세계적으로 볼 때 살인사건 발생비율이 일본(인구 10만 명당 1명) 다음으로 적은데도 왜 유독 가족간 살인사건의 비율이 높을까?

가족구조의 특수성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가족의 해체와 결합이 빈번한 서구사회의 경우 구성원들의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지 않고 종결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네 가족구조는 혈연관계를 토대로 끈끈하게 맺어져 있어 감정의 골이 깊어져도 구성원에서 이탈하기가 어렵다. 아무리 가족병리가 심하더라도 친족관계를 끊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다. 구성원으로 맺어져 있는 상태에서 갈등이 깊어져 마침내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사실은 가족구성원 간 발생하는 폭행치사(애초 살해할 의도를 갖고 폭행했느냐 여부에 따라 살인과 폭행치사로 구분된다) 사건의 빈도다. 정확한 통계를 구하기는 어렵지만 서구사회에 비해 가족간 폭행치사 사건의 빈도가 높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가족의 한 구성원이 다른 구성원을 폭행해 죽음에 이르게 하는 폭행치사가 자주 발생하는 것은 가정폭력이라는 고질적 병폐를 대처하는 데 우리 사회가 미숙하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가정을 사적 영역으로 취급해 남의 가정사에 개입하는 것을 꺼려왔다. 형사사법기관의 태도도 마찬가지다. 서구사회는 체포 우선주의를 원칙으로 가정 내 폭행사건을 다루지만, 우리는 가정의 보호라는 측면을 강조해 가해자의 처벌에 미온적으로 대처해왔다. 지나친 보호주의적 접근이 가족범죄를 방치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진정한 가정의 보호는 이혼율을 감소시킴으로써만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가족의 개별 구성원이 느끼는 행복지수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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