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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성 은폐 일 태도 공박/「위안부 실태조사」정부 보고서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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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진상조사 촉구… 배상근거도 마련/과법청산,외교걸림돌 제거의지
31일 정부가 발표한 「일제하 군대위안부 실태조사 중간보고서」는 정신대 문제에 대한 정부의 첫 공식문서로서 진상조사와 피해자 배상문제를 다루어가는데 중요한 근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정부는 한국인 군대위안부를 민간인이 운영하고,정부는 개입하지 않은 것으로 주장해왔다. 이는 자신들이 강제적으로 동원한 사실을 숨겨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물론 강요된 위안부들을 「매춘부」취급함으로써 두번 죽이는 만행을 저지른 셈이다.
일본정부는 한국내 거센 여론의 반발에 따라 지난 7월6일에야 「위안부관리」에 정부가 개입했음을 시인했으나,이때도 모집과정에서의 개입과 강제성에 대해서는 『자료가 없다』는 이유로 인정하지 않았었다. 생존자의 증언이나 일본인 가해자들의 고백,일본인 학자들의 저술 등은 전혀 감안하지 않은 결과다.
그런점에서 이번 한국정부의 발표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논쟁의 실마리를 제공하고,일본정부에 배상문제와 관련한 새로운 대응을 강제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국정부는 일본정부의 발표자료 외에도 제3국에서 발굴한 자료와 생존자 증언 등을 보다 넓게 수집,정리해 일본측의 소극적인 입장을 반박했다.
또 이 보고서는 일본정부의 부도덕한 「인간사냥」과 공권력에 의한 위협으로 저지른 「집단강간」을 고발함으로써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정부의 배상책임을 간접적으로 입증했다는데서도 중요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정부는 17개 관계부처 관련과장으로 구성된 「정신대문제 실무대책반」을 설치,우선 모든 자료를 쥐고있는 일본측의 자료공개를 요구하고 미국·영국·네덜란드 등 2차대전 당시 연합국에 주재하고 있는 공관에도 자료조사를 지시했다. 또 내무부와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정신대 피해자 신고를 받았다. 생존자로부터는 증언도 들었다.
정부의 이번 조사는 대부분 일본측이 전달해준 것을 기초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한계를 안고 있는게 사실이다. 그러나 김석우아주국장의 말처럼 강제성의 거증책임은 패전과 함께 정부문서를 소각 등 파기했고,잔류문서의 대부분을 갖고 있는 일본정부측에 있다. 그런점에서도 일본정부는 이번 한국정부의 보고서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정부도 강제동원의 심증을 부인하지 못하고 있을뿐 아니라 생존자들의 증언을 부정하기 위해 자료조사를 계속할 경우 일본으로서는 국제적으로 여론의 표적이 되는 곤혹스런 입지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가토 고이치(가등굉일) 일본관방장관이 31일 가능하면 연내에 후속조치를 끝내겠다고 말한 것도 그런 사정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일본정부가 한국정부의 발표를 수용한다고 해도 정부차원의 조사를 여기서 마무리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일본정부가 자료를 내놓지 않는한 조사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고 따라서 민간인에게만 맡기기에는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또 생존자의 증언 등 좀더 구체화할 수 있는 부분도 이번 조사에서는 미진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또 한가지는 배상문제다.
외무부의 한 관계자는 이번 조사가 완전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일단 이것을 기초로 후속조치에 대한 협상을 시작하겠다고 밝혀 위안부 문제는 사실상 제2단계에 접어들었음을 분명히 했다.
정부는 이번 발표를 통해 일본정부에 「사죄의 뜻을 충분히 나타낼 수 있는 성의있는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했다.
한국정부가 정부문서로서는 이례적으로 적극적인 해석을 가한 보고서를 발표한 것도 한일간의 외교적인 걸림돌을 빨리 치우고,이성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외교관계를 정립하겠다는 의지를 깔고있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정부내에는 당초 65년의 청구권 협상으로 대일 배상요구의 법적인 대응에 한계가 있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이 때문에 피해자들에게 우선 한국정부가 직접 보상하고 차후에 일본측과 협의하는 방안도 검토했으나 경제부처의 반발로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부처는 「정신대를 한국정부가 보상할 경우 징용자 등 다른 피해자들이 정부에 보상을 요구할때 거부할 명분을 잃게 된다」며 반대했다는 것이다.
또 일부 피해자들이 일본 법정에서 제기하고 있는 일본정부의 피해자에 대한 개별배상 방식은 일본정부가 난색을 표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에서나 행정적으로 조치를 취할 구체적인 증거가 나오지 않고 있다는 이유다.
물론 이점에서 한국정부의 공식보고서가 얼마나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을지도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또 한가지는 일본의 언론을 통해 흘러나온 것으로 일본정부가 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기금을 만드는 방식이다. 아직 이에 대해서는 일본정부 내에서도 이견이 있어 공식화 하지는 못하고 있으나 이 방식을 채택할 가능성이 가장 큰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진상규명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협상이 시작되면 흥정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해결책이 어떤 것이건 진실을 얼버무리는 흥정이 돼서는 새로운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자칫하면 진상규명을 배상에 앞세워 강조하는 정부의 태도가 흥정의 결과에 따른 국민의 비난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인식될 수도 있다는 점을 협상에 임하는 정부대표들은 명심해야 할 것 같다.<김진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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