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의 올림픽 독「카셀 도큐멘타」전|불안·혼돈의 현대정신 표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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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오늘날 세계미술의 올림피아드라할 제9회 카셀 도큐멘타전(Kassel DocLlmenta9 )이 세계 37개국에서 선정된 미술가 1백89명의 최신작품 약 1천여점을 선보이며 화제속에 열리고 있다(9월20일까지).
중부 독일의 조용한 고도 카셀에서 지난 6월13일 개막된 이 전시회는 1개월이 지났음에도 관람객의 줄이 끊이지 않고있어 이 전시회에 대한 세계인들의 관심을 짐작하게 한다.
카셀시의 박물관·갤러리·공원·건물들 모두가 이번 작품전에 참가한 예술가들의 전시장이지만 그중 주 전시장은 프리드리히아눔미술관과 도큐멘타 할레, 오랑제리, 노이다 갤러리등 30여개소.
프리드리치아눔미술관앞 프리드리히광장에서는 마침 쇠기둥위에 올라선 한 남자가 지상을 떠나고 있었다. 직경 50cm, 길이 25m, 65도 각도로 하늘을 향해 급경사로 세워진 강철쇠파이프위에 세워진 플래스틱남자는 7월의 햇살과 빗속에서 우리 모두의 꿈, 지상의 번뇌를 떠나고자 하는 꿈을 실현하고 있었다.
미국의 조너선 브롭스키의 작품 『하늘로 가는 사람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아!」하는 탄성을 자아내는 그의 작품은 그 명료한 메시지로 하여 이번 도큐멘타전의 한 상징처럼 눈길을 모으고 있었다.
바로 미술관 입구쪽 광장에는 한국 예술가로는 최초로 이번 도큐멘타메 초청된 육근병(35)씨의 설치작품 『랑데뷰-터를 위한 눈(안)』이 눈길을 모은다. 지상에 솟아있는 한국식무덤과 그를 마주보고 있는 검은쇠기둥. 그곳에는 각기 VTR화면이 박혀있다. 구조물은 각기 동과 서, 즉 동양과 서양의 만남을 의미하며 화면은 각기 독일과 한국 어린이의 눈으로 역시 동서의 만남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육씨는 개막 첫날 한국 전통사물놀이와 장례의식등을 결합시켜 민족통일을 염원하는 이벤트도 가졌다. 육씨는 경희대미대 출신으로 한국의 몇 안되는 설치작가중 한사람. 79년이후 그룹전, 개인전을통해 활약해 왔다. 이번 도큐멘타의 예술가안내책자는 그를 「내부와 외부의 모든 압박으로부터의 해방을 추구하는 작가」라고 평했다.
프리드리히아눔미술관 입구로 들어가면 새까맣게 개미떼가 그려진 벽과 천장이 보는이를 압도한다.
페터 고굴러가 컴퓨터를 이용해 그린 것. 왼쪽 방으로 들어가면 사방흰벽속에 2개씩 겹쳐진 TV세트가 엇갈려 3곳에 설치되어 있어 총6개의 화면이 각기 대머리의 백인남자의 얼굴을 비추고 있다. 무표정한 그 남자는 염불을 외듯 「나를 도와줘, 때려줘, 사회학」「나를 먹여줘, 먹어줘, 인류학」하며 끊임없이 읊어댄다.
끝없이 움직이지만 단조로운 화면, 거꾸로 바로 3면 벽에 비춰지는 일렁이는 그림자, 단조롭지만 끊임없는 낮은 외침은 사람들을 알수 없는 절망감과 초조함에 사로잡치게 한다.
미국의 찰스 레이작인 실물크기 동성연애 남자 8명의 플래스틱 포르노 그래피 조각은 현대사회의 퇴폐와 부도덕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이번 도큐멘타의 특징은 조각과회화·설치등모든 미술장르간의 벽이 무너진채 주제또한 극도의 혼란상을 보인다는 것. 작품을 하나하나 보노라면 보통 관객의 머리에 떠오르는생각은 「그래서 어쩌자는것이냐」는 물음이다. 그리고 우리 시대의 미술이 어디론가 극한을 향해 치달리는것 같아 문득 불안해진다.
4년 또는 5년마다 열리는 도큐멘타는 지난55년 카셀의 미술가아놀드 보데가 「20세기 서양미술학회」를 만들어 당시모던 아트의 국제조류에서 소외된 독일의 미술부흥을 목적으로 시작했다.
70년 이래 도큐멘타는 가장 명망있는 국제 현대미술의 제전으로 일컬어져 왔다. 올해의 총감독은 화란의 예술사학자인 얀 호에트.
그는 직접 세계를 돌며 출품작가를 선발했는데, 도큐멘타의 목적은 『예술가 개인의 경험을 토대로 오늘날 미술의다양한 지평을 열고가야할 길을 암시하고 가는 길의 방해물에 도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카셀=박금옥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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