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증권 주도­회계사 공모/합작사기로 드러난 「신정」부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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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계열사 내세워 업무장악… 28억 챙겨/눈감아준 증감원 유착여부 못밝혀
검찰이 전면수사를 벌인 신정제지 사건은 기업주와 공인회계사·증권사 등이 공모한 구조적인 대형비리로 드러났다.
검찰조사 결과 신정제지는 85년 12월26일 설립된이래 91년까지 7년간 적자누적분이 3백40억원 이상에 이르고 또 한번도 흑자가 난 일이 없는 전형적인 부실기업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이 회사는 회계사등과 짜고 분식결산을 통해 91년 한햇동안 13억원의 흑자를 낸 유망기업으로 위장,1월23일 상장했다.
신정제지 대표 유홍진씨는 상장당일 미 스탠퍼드대 경제학박사로 하버드대 강단에 섰던 경력을 가진 우성창업투자 대표 한광호씨(34)와 짜고 7개의 가명계좌로 주식 고가매수에 나섰다.
그 결과 시초가는 공모가인 6천원의 2.4배인 1만4천5백원으로 껑충 뛰었고 일반투자가들도 대거 매수에 나서게 됐다.
유씨는 이어 2월16∼27일 사이에 보유주식 16만8천주를 주당 1만1천원씩에 팔아 18억원을 챙겼다.
그러나 신정제지는 각종 금융기관 대출금 4백80억원,회사채 1백10억원 등 6백60억원의 부채중 4백여억원의 부채를 갚지못한채 상장 3개월만인 4월29일 부도를 냈다.
검찰은 이번 사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은 대신증권으로 보고있다.
대신증권은 계열사인 대신개발 금융을 내세워 설립 5년이 지나 창업지원 대상이 될 수 없는 신정제지의 설립연도 등 요건을 조작했다. 이어 정부로부터 중소기업 창업지원 자금을 받아 25억6천만원을 출자,전체주식 1백84만주의 26.2%인 48만2천주를 사들여 대주주가 됐다. 이후 대신개발금융은 회사경영 전반에 개입,기업공개 방침을 세우고 주간사회사로 대한증권을 선정해 간판역할을 맡겼으나 실질적으로는 기업공개 업무를 장악했다.
대신개발금융 대표 나영호씨(46)는 시초가 조작으로 상승했던 주가가 하락세를 보이자 2월1일부터 17일까지 보유주식 전량을 평균 1만1천3백원씩 모두 52억원에 매각,28억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챙겼다.
증권감독원 검사 4국차장 이동구씨(현 감사실장)등 직원 3명은 나씨가 내세운 전직검사국장 출신인 대신증권감사 최일섭씨(52)의 로비를 받고 주식보유상황 미신고에 따른 고발조치를 취하지 않는 등 직무를 유기했다.
이번 사건의 가장 큰 피해자는 일반투자자와 주간사 회사인 대한증권.
검찰은 소액주주 2만1천여명이 65만여주를 사들여 39억여원을 손해봤고 주간사인 대한증권은 유가증권 인수업무 등 규정에 따라 유씨와 대신개발금융의 대량매각으로 급락한 주가를 부양하기 위해 발행가 이하로 64만여주를 매입,36억여원의 자금이 허공에 뜬 상태라고 밝혔다.
검찰수사는 이번 사건이 신정제지·회계사·증권사의 치밀한 공모에 의한 총체적 비리임을 밝혀냈으나 기업공개 감리기관인 증권감독원과의 유착관계 규명에는 끝내 실패,한계를 드러냈다.
이와 함께 이번 사건의 핵심인 대신증권에 대해서도 수뇌부의 구체적인 개입사실을 잡아내지 못하고 대리인인 계열사 간부만을 처벌한 것도 의문점으로 지적되고 있다.<이하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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