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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전기 없어 모든 연락 수신호로 처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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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남북 열차 시험운행에 참가한 북측 인사들은 남측 언론과의 인터뷰를 피하거나 발언을 극도로 자제했다. 시험운행 합의 시 북측은 언론인터뷰를 하지 않겠다는 조항을 집어넣었다. 북측 인사들이 입을 꾹 다무는 바람에 객차 안의 분위기는 썰렁했다. 그런 가운데 몇몇 인사는 연설 또는 대화를 통해 이번 시험운행을 보는 시각을 드러냈다.

17일 오후 금강산역을 출발해 강원도 제진역에 도착한 북측 기관사 노근찬씨가 북으로 돌아가기 전 남측 기관사들과 악수하고 있다.[뉴시스]

동해선을 타고 제진역에 온 김용삼 북측 철도상은 17일 남북 철도와 러시아횡단철도(TSR)의 연결 문제와 관련, "(남측)경부선으로 하면 러시아는 못 간다. 기술적으로 어렵다"고 밝혔다. 김 철도상은 이용섭 건설교통부 장관과 마주앉았다. 이 장관이 "경부선이 잘 발달돼 있는데 이를 활용하면 (연결에)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자 난색을 표명했다.

김 철도상은 "우리로선 (남측 열차가) 서해로 와서 동해로 가는 것을 수행하기가 좀 어렵다"며 "하바롭스크에서 이철 철도공사 사장을 만났을 때도 기술적.실무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열차 바깥의 북측 주민들은 무표정했고 손을 흔들지도 않았다. 그러자 북측의 한 탑승자는 "농번기 아니냐. 다들 바빠서 그렇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인사는 "시범운행인데 흥분할 일이 있느냐"고 했다. 경의선 열차는 손하역을 지나 오후 1시3분 개성역으로 들어갔다.

금강산역에서 출발한 북측 기관사 노근찬씨는 남측 취재진의 잇따른 질문에 손사래를 쳤다. 노씨는 열차 탑승 직전 이용섭 장관이 "역사적인 순간인데 소감이 어떠냐"고 묻자 그제야 "조국 분단 역사에서 잊지 못할 날이라고 생각한다. 6.15 정신에 기초해 북남 통일을 앞당기는 데 이바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남측에 온 북측 열차=동해선을 달린 디젤 전기기관차의 측면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몸소 오르셨던 차. 1968년 8월 9일'이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김용삼 철도상은 "이 열차보다 좋은 것도 있지만 우리 수령님의 통일 유훈을 관철하자는 의미를 담아서 (열차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기관차는 외관상 남측의 70년대 열차와 비슷했다. 총 4량의 객차가 연결됐으며 매 객차는 길이 24.6m, 좌석 106석이었다. 남측의 객차가 길이 20m, 72석인 데 비하면 긴 편이다. 열차는 군사분계선(MDL)을 넘는 동안 시속 20~30㎞로 서행했다.

동해선에 탑승한 남측의 동해기관차승무사무소 김동률 기관사는 "68년식 기차였지만 관리를 굉장히 잘해서 기관실과 운전실 등이 매우 깨끗했다"고 전했다. 그는 "기관사, 기관조사, 제동해방(브레이크 검사) 같은 용어가 비슷했으나 북측 기관차에선 무전기 없이 모든 신호를 수신호로 처리한다는 점이 차이 났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북측 기차엔 흔들림을 잡아주는 완충장치가 없어 시속 50㎞ 이상으로 달리면 좌우 흔들림이 심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공동취재단,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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