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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열차 타고 유럽까지 갔으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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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17일 경의선 철도 시범 운행을 보기 위해 몰려든 관광객들이 파주 임진각 전망대에 올라 문산에서 개성까지 운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열차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17일 낮 남과 북의 열차가 반세기 만에 분단의 벽을 가로질렀다. 서울대 김영빈(23.경제학부)씨는 TV 생중계를 통해 이 모습을 보며 벌써 대륙횡단 열차 여행의 꿈에 빠져 들었다. "서울서 유럽까지 기차로 갈 수 있는 날이 성큼 다가온 느낌입니다."

경의선.동해선 시험 운행 소식을 들은 시민들은 기대와 감동을 감추지 않았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김호영(50.서울 송파구)씨는 "유럽까지 기찻길이 연결되면 물류비가 크게 줄어 경제적 실익이 클 것"이라고 기대했다. 주부 조희순(41.서울 동작구)씨는 "'철마는 달리고 싶다'던 슬픈 표지판이 기억에 선하다"며 "앞으로 남북 경제교류가 활발해지고 개성.금강산은 물론 러시아.유럽까지 철도로 연결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날 열차에 탑승한 서울대 김귀곤(조경학) 교수는 "7년간 비무장지대(DMZ)의 생태조사와 남북 철도의 사전 환경영향 조사를 해 왔다"며 "곱게 키운 딸을 시집보내는 기분"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김 교수는 "정치.경제 분야뿐 아니라 비무장지대의 환경생태연구에서도 협력이 활발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 가슴 부푼 실향민들=이날 경기도 파주시의 경의선 문산역 앞에 마련된 시험 운행 행사장에 나온 실향민들도 옛 기억을 떠올리며 감격한 표정이었다. '통일을 바라는 사람들의 모임'의 이은섭(78.파주시 문산읍) 회장은 "고향을 눈앞에 두고도 반세기가 넘도록 실향의 아픔을 씹으며 살아왔는데 남북 열차 운행으로 고향을 찾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 같아 흥분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장단이 고향인 김석주(73.파주시 금촌읍)씨는 "한국전쟁 이전 석탄을 때며 '칙칙폭폭'하는 소리와 함께 경의선 증기기관차를 타고 서울 용산중학교로 통학했던 추억이 되살아난다"고 말했다. 이북도민회중앙연합회 원복규(76) 사무총장은 "초등학교 때 부모님과 경의선으로 신의주까지 가서 베이징을 여행하던 추억이 새록새록하다"면서도 "북한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로 교류가 물거품이 될까 걱정도 된다"고 말했다.

◆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선 안 돼"=탈북자 인권단체인 북한인권시민연합의 김영자 사무국장은 "일회성 이벤트로 끝날 게 아니라 민간 교류를 활성화해 북한 주민들의 인권 향상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유시민연대 김구부 사무총장은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남북 간 열차 연결이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에 기여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퍼주기 논란'도 제기됐다. 탈북자 단체 연합인 북한민주화위원회는 성명서를 통해 "역사적인 열차 개통이 김정일 정권에 대한 퍼주기로 순수성을 잃어 버려 '정치쇼'로 전락했다"며 "남한 정부의 퍼주기 명분을 세워주기 위한 일회성 열차 운행을 마치 역사적인 사건처럼 미화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날 문산역에서는 납북자 가족들이 "납북자와 국군포로의 생사를 확인해 달라"며 기습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전익진.최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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