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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지갑 줍다 소매치기 누명/이번에도 중학생… “억울하다” 호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올들어 「증거없는 구속」 28명/변호사들 “무고한 죄인 방지대책 시급”
경찰의 중학생 소매치기 조작사건 파문이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서울경찰청 도범계 형사들이 또다른 중학생 1명을 무리한 강압수사끝에 소매치기 전과자로 만들었다는 피해 주장이 나와 소매치기사범 수사관행에 대한 의혹과 비판이 더욱 높아졌다.
특히 이 사건에서는 돈이 한푼도 들어있지 않은 빈 동전지갑을 훔쳤다는 경찰의 수사기록만으로 범죄 전력이 전혀 없는 10대 중학생을 구속까지 한데다 당시 함께 있던 다른 2명은 혐의가 없다며 모두 풀어준 것으로 밝혀져 소매치기할 상황이 아니었음이 입증되고 있다는 점에서 법 집행의 허점을 드러내고 있다. 경찰의 자체집계·분석에 따르면 소매치기 피의자중 10% 정도는 피해자 확보없이 임의성마저 불확실한 자백만을 증거로 입건돼온 것으로 드러나 이들 중학생같은 「무고한 희생자」를 낳을 가능성에 대해 근본적인 방지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구속=서울 S공고 1년 주모군(16)은 중학 3학년에 재학중이던 지난해 11월10일 오후 남대문시장에서 20대여자의 핸드백에서 1천원짜리 빈 동전지갑을 훔친 혐의로 서울경찰청 도범계 오모순경(32) 등 네명에게 붙잡혀 다음날 구속된뒤 11월19일 검찰의 기소유예로 풀려났다. 당시 피의사실 기록에는 「주군이 노점에서 옷을 고르던 피해자의 핸드백을 열고 지갑을 훔쳤다」고 돼있으나 정작 오 순경의 목격 진술엔 「여자 뒤에 붙어있다 떨어지는 것을 보고(돈지갑을 꺼내는지는 정확히 보지못함) 미행끝에 검거…」로 모호하게 적혀 있다. 당시 이모군(14) 등 동네 후배 2명이 주군과 동행중이었으나 이들은 혐의가 없다며 풀어줬다.
◇조작 주장=주군은 그러나 『시장구경중 빈 지갑을 주워 이군에게 줬고 이군이 지갑고리에 손가락을 끼워 돌리고 다녔다』며 『갑자기 이상한 아저씨들이 쫓아와 인신매매범 쯤으로 생각,달아나다 붙잡혔다』고 주장하고 있다.
주군은 이어 부근 파출소로 끌려가 20여분간 뺨·다리를 얻어맞았고 서울경찰청에 가서도 식사를 거른채 자정까지 매를 맞으며 어쩔수 없이 허위자백했다고 말했다. 주군의 어머니 정모씨(38)는 『구속후 면회때 「안훔쳤다」는 아들의 말을 듣고 변호사를 선임,며칠뒤 풀려났으나 이미 전과자가 됐음을 나중에 알았다』며 수감중 모방송사에 진정하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경찰은 『주군이 스스로 자백했을뿐 때린 일은 없다』고 강력히 부인했다.
◇문제점=올들어 서울경찰청에 입건된 1백90건(4백여명)의 소매치기중 17건이 주군 경우처럼 목격자나 피해자 진술없이 자백만으로 28명이 구속되고 2명 불구속,7명(형사미성년자)이 소년감별소에 송치됐다.
이에 대해 안상수변호사는 『소매치기범죄 특성상 경찰의 목격 진술만으로도 관행처럼 구속영장이 발부되고 있다』며 『경찰관의 자질과 인권의식에 의존할 도리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최영도변호사는 『객관적 증거확보가 어렵긴하나 무고한 누명피해를 막기위해선 다른 형사사건처럼 증거우선주의가 채택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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