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분히 치러지는 일 참의원선거/이석구 동경특파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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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참의원 선거를 하루 앞둔 일본에서는 각 정당이 표를 긁어 모으기 위해 마지막 안간힘을 쏟고있다.
이에 따라 신문과 방송에서 상당한 지면과 시간을 할애해 선거관련기사를 취급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처럼 그리 크게 다루지 않는다. 쟁점 등을 다루고 여론조사를 통해 선거예측 보도를 하지만 매일 1면 머리를 선거 관련기사가 장식하지는 않는다. 정당후보간의 흑색선전이나 폭로전술도 볼 수가 없다. 청중들의 반응도 냉정하다. 수 많은 청중들이 모여 우뢰와 같은 박수를 치고 구호를 외치는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총리의 지원연설회에 1천여명이 모였다면 대성황이라할 정도다. 살벌한 모습도 눈에 띄지 않는다.
우리와 더욱 다른 것은 공영방송 NHK가 오후 8시 등 황금시간대에 각 정당의 정견발표 프로그램을 방송한다는 점이다.
무려 38개 정당 모두에 기회를 주다보니 듣도보도 못한 정당이 나와서 우리가 보기에는 엉뚱한 공약을 내걸기도 한다. 나라와 민족만을 외치는 근엄한 정치인들을 주로 보아온 기자의 눈에는 코미디처럼 보이기도 한다.
NHK뿐만 아니라 민간방송과 신문에도 후보 및 정당의 정견과 경력이 무료로 보도된다. 다나베 마코토(전변성) 사회당위원장이 선거용 CM에 나와 인자한 웃음을 흘리며 지원을 호소하는 것을 보면 희극적이다.
정치에 관한한 선진민주주의 국가라고 볼 수 없는 일본이지만 선거가 공영제로 치러지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참의원 선거의 경우 각 정당은 2천2백만∼4천만엔의 공탁금(후보 1인당 비례대표 4백만엔,지역구 2백만엔)을 걸고 비례대표와 지역구를 합쳐 10명의 후보자만 내면 정당으로 인정받아 선거공영의 각종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지역구 후보와 비례대표에 후보를 낸 정당은 각각 8회에 걸쳐 TV와 라디오를 통해 정견과 경력을 무료로 방송할 수 있다. 신문광고도 5회가 가능하다.
이같은 선거공영을 위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책정된 예산이 무려 4백42억8천만엔이나 된다.
한편 선거공영제가 실시되는 대신 호별방문·사전선거운동·플래카드·서명운동·인기투표·매수·향응제공 등이 지나칠 정도로 엄격히 금지돼 조직을 가진 기존 정치인이나 정당에 유리하다는 단점도 있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온 나라가 지나친 선거열풍에 휩쓸리지 않은채 선거가 차분히 치러진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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