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경협은 서로 믿는 가운데(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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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작년 10월 중국을 방문했을때 북한의 김일성은 등소평의 권유에 따라 황해연안의 경제특구를 1주일간 시찰했다. 사회주의나라 중국이 자본주의를 실험하는 현장을 둘러본 김일성은 그 활력과 성과에 매우 긍정적인 교훈을 얻은 것으로 보도됐었다.
그 김일성이 이번에는 북한의 최고위급 경제담당관인 김달현부총리를 자본주의를 통해 경제성장을 이룩한 남한에 보내 산업현장을 견학하도록 했다. 김달현 역시 한국경제의 현장을 보고 많은 것을 느낀듯 하다. 산업시찰기간중 계속 진지한 태도를 보여온 그는 중국·러시아 등 외국과의 협력에 앞서 같은 민족인 남북간의 경제협력이 이뤄져야 한다고도 했고,노태우대통령에게는 북한의 남포공업단지 조성사업이 성사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북한이 오늘의 경제난국을 극복하려면 개방노선을 강화해 시장경제적 경영방식을 도입해야 된다는건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것은 사회주의 종주국이었던 소련과 동구,그리고 지금 중국의 실상이 증언하고 있다.
북한이 시장경제를 도입키 위해서는 자본주의 진영에서 경협파트너를 찾아야 한다. 그중 가장 적절한 상대는 김 부총리도 말했듯이 남한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88년의 「7·7선언」에서 남북교역의 문호를 개방하고 그것을 내부교역으로 간주하여 부담을 경감시킬 것임을 분명히 했다. 남북기본합의서에도 경협의 장치는 마련돼 있다.
문제는 이같은 협력을 저해하는 요인이 제거되지 않고 있으며 그 책임이 전적으로 합의를 이행치 않은 북한측에 있다는 점이다. 지금 남북협력의 최대 장애는 북한의 핵문제다. 남북이 보유치 않기로 합의한 재처리 시설을 북이 가지고 있고,상호 핵사찰 합의의 이행마저 기피하는게 문제의 핵심이다. 북이 남북간의 합의만 성실히 지키겠다는 생각이면 부속합의서가 쉽게 타결돼 핵문제가 남북관계의 걸림돌에서 제외될 것이며,자연히 경협도 부속합의서에 따라 원활하게 진행되게 될 것이다.
김 부총리는 이번 남쪽방문에서 직접 보고 느낀 우리 경제실상과 남쪽 사람들의 정서를 가감없이 북에 전해주기 바란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번 시찰이 남북관계의 장애요인과 상호 오해를 해소하는 계기가 되어 곧 기본합의서의 실행을 위한 부속합의서의 타결과 전반적인 남북관계의 활성화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경제적으로 북한이 새로운 전환과 도약을 하려면 필연적으로 내외정책의 조정과 내부체제의 정비가 필요하다. 새술은 낡은 부대에 담을 수 없는 것이다. 오늘의 세계는 민족단위의 국가들이 벌이는 격심한 경제경쟁으로 특징지워지고 있다. 북한은 과거의 낡은 냉전 시대적 사고와 논리에서 벗어나 믿을 수 있는 새로운 모습으로 민족공영의 길로 나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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