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경협 길 넓어졌다/김달현부총리의 「6박7일」 결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필요성 공통인식… 협력촉진 전망/핵문제 걸려 본격추진은 유동적
김달현북한부총리의 이번 6박7일간의 방문은 그동안 교착상태에 빠져있던 남북경협에 획기적인 전기가 되지는 못했어도 그동안 유보돼온 남포경공업단지의 타당성 검토를 위한 조사단의 방북에 합의함으로써 일단 돌파구는 마련됐다고 보여진다.
남북경협은 핵문제와 연계되면서 제동이 걸렸고,따라서 북한이 핵문제 타결에 대한 전향적인 자세변화를 보이지 않는한 이 문제는 풀기 어렵게끔 되어있다. 따라서 방문발표 직후부터 김 부총리 발언이나 김일성메시지를 통해 핵문제와 관련한 북한측의 태도변화가 있지 않을까 주목되었으나 결국 이 문제는 전혀 언급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결국 남북경협의 확대를 위한 획기적인 전기를 만드는데 실패했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정부 일각에서는 남북간의 경협확대는 민족공동체 수립이라는 궁극적 목표나 또는 현실적으로 남북의 상호보완성을 살린 국제경쟁력 확보의 유효한 수단으로서 매우 시급하다는 주장이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지만 핵문제라는 암초에 걸려 한치도 나가지 못해왔었다.
따라서 이번에 북한의 요청을 받아들여 그동안 유보됐던 남포경공업단지의 타당성 검토를 위한 조사단 방북에 합의한 것은 상당한 의미를 갖고있다.
김달현부총리는 24일 청와대 예방에서 전달한 김일성주석의 구두메시지를 통해 남포경공업단지 사업에 대한 협조를 공식적으로 요청했다.
이에 따라 김 부총리가 입경 첫날부터 운을 떼온 이른바 「시범사업」이 지난 1월 김우중대우그룹 회장의 방북시 합의했던 남포경공업단지에 대한 합작투자 사업이었음이 분명해진 셈이다.
정부는 이같은 북한의 요청에 대해 「핵문제의 해결과 남북 기본합의서에 의거한 부속합의서가 타결되어야 경제협력이 가능하다」는 원칙을 재천명하고 다만 「경협의 전단계 사업」으로 남포공단에 대한 타당성 조사를 위한 조사단 파견을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남포공단에 대한 타당성 조사단의 방북도 넓은 의미에서 보면 남북경협의 한 형태임에 분명하지만 정부는 이는 남북경협 그 자체가 아니며 핵문제와 부속합의서 타결 이후의 본격적 경협에 대비한 사전준비적 성격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시각도 그동안 경협과 관련해 대단히 경직돼 있던 자세에서 탈피,핵문제가 풀리기 전에 경협 자체는 이뤄질 수 없다 해도 이제는 어느시점에선가 이 문제가 풀릴 때를 대비,사전준비를 갖춰놓겠다는 정부의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주목할만한 변화다.
이는 일본이 일본·북한 국교정상화 교섭을 벌이면서 50억∼80억달러로 예상되는 배상금을 무기로 이미 북한진출을 위한 물밑교섭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음을 고려할때 더욱 큰 의미를 갖고있다.
남포공단 타당성 조사단의 방북은 김우중대우회장이 방북,남포공단에 대한 합작투자에 합의하고 귀국한후 조사단 방북에 대한 정부승인을 요청했었고 핵문제가 걸림돌로 작용하기 이전인 지난 2월말 사실 내부승인 결정이 났었던 문제이기 때문에 특별히 시일이 필요한 상황은 아니다.
25일 오전 최각규부총리와 김달현부총리의 회담에서도 남포공단의 타당성 조사단을 가급적 빠른 시일안에 보내기로 합의했고 이에 따라 내달중에는 조사단 방북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의 고위관계자는 조사단에 대우와 여타 투자희망 기업 관계자 외에 공단건설에 경험이 풍부한 토지개발공사 관련 전문가를 포함시킨다는 방침은 정했으나 기획원 등 정부관계자까지 보낼 것인지 여부는 아직 결정치 못했다고 밝히고 있다.
시기 등은 아직 잡히지 않았지만 최각규부총리가 이번 김 부총리의 서울방문에 따른 「상호주의」적 차원에서 평양을 공식적으로 방문키로 함에 따라 앞으로 민간·정부 양쪽에서 남북경협을 위한 보다 구체적인 협의가 이뤄질 수 있게 됐다. 이번 김 부총리의 방문을 통해 그동안 이른바 민간차원의 경협만을 고집해온 북한이 처음으로 양측 정부당국을 경협파트너로 받아들인 것은 북한 자체의 절박한 필요성이 그 원인이 됐겠지만 앞으로 남북경협이 보다 「질서있게」이뤄지는데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김달현부총리가 산업시찰 과정에서 우리 기업의 시설과 기술수준 등에 놀라움을 감추려 하지 않았고 다른 외국의 투자유치단을 방불케 할 정도로 우리 기업의 투자를 적극적으로 희망했으며,특히 화승산업의 방문에서 「북의 노동력과 남의 기술」을 합치자는 발언을 한 것은 남북경협의 필요성에 대한 기본적 인식이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 것이어서 앞으로 바람직한 협력관계를 정립하는데 중요한 배경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박태욱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