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무 “정씨일당과 술먹다 망했다”/정보사땅사기 관련자들이 남긴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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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장관직인은 찍은 사람에게 물어보라” 김영호씨/“모로가도 서울만 가면된다” 정건중씨/“정 회장을 지금도 존경한다” 정영진씨/“목수출신에게 무슨 배후냐” 김인수씨/“역시 사기에는 왕도가 없다”/ 부장검사
정보사부지매각 사기사건 피의자들은 자수·검거과정이나 수사중에 그들의 사기동기나 인생관을 보여주는 「말」들을 남겼다.
이들은 특히 자신들의 사기행각이 전국민적인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의식한듯 다른 사람에게 죄를 떠넘기고 자신들의 입장을 합리화하려 애썼다.
이번 사기사건의 주범인 전 합참군사 자료과장 김영호씨는 처음 중국에서 압송돼왔을 당시 『나는 이 사건의 주범이 아니다. 국방부장관 직인문제는 도장을 찍은 사람에게 물어보라』고 말해 마치 상당한 배후가 있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그러나 검찰의 끈질긴 추궁끝에 김씨는 마침내 『나는 봉이 김선달보다 더한 놈이다』라는 말로 자신이 사기꾼임을 인정했다.
제일생명으로부터 6백60억원의 거액을 사기하는데 「간판스타」역할을 담당했던 성무건설 정건중회장의 말은 정씨의 사기일생을 이해하는데 설득력있는 실마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정씨는 검찰조사과정에서 수기관이 사기동기를 집요하게 추궁하자 자신이 쓴 수상록의 내용을 인용,『나는 국제정치에 밝은 케네디대통령같은 분을 존경한다』고 운을 뗀뒤 『중국의 등소평이 주장했던 흑묘백묘론(검은 고양이든,흰 고양이든 쥐를 잡기만 하면 된다는 의미로 중국에 이롭기만 하면 자본주의 방식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정책)처럼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해 수사관들을 어안이 벙벙하게 만들기도 했다.
정씨는 또 『인간은 모순과 모순사이에서 방황하는 존재다. 이것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모순이다』라는 알쏭달쏭한 말을 해 자칭 「철학박사」다운 면모를 보였다.
김영호씨와 정씨 일당사이에서 연결고리 역할을 담당했던 김인수씨는 자수직후 『범인은 공직자』라고 말해 배후가 규명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갖게 했으나 막상 검찰조사과정에서는 『목수하던 사람이 배후는 모슨 배후냐』고 일갈,실망을 안겨주었다.
이번 사건의 범인들간에 얽힌 이야기도 흥미있는 대목.
제일생명 윤성식상무는 검찰조사관들과의 한담에서 『정씨 일당들 하고 술먹다 망했다』고 한탄,거래과정에서 이들과 무분별하게 어울린 것이 결국 「패가망신」으로 이어졌음을 통감하는 듯했다.
정영진씨가 야구장에서 처음 정건중씨를 만나 정씨가 학식이 높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겸손한데 반해 『아직도 존경하고 있다』고 말한 것은 이들의 순진한 구석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경기도 고양시 6촌형 집에서 22일 검거된 신준수씨는 장롱속에 숨어있었던 것으로 드러나 쫓기는 사람의 불안감과 고통을 피하려는 안간힘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번 사건을 총괄지휘했던 서울지검 특수1부 이명재부장검사는 이들 사기집단에 대한 견해를 한마디로 규정했다.
『사기에는 왕도가 없다. 도망가지 않고 남아있는(체포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기꾼이 진짜 사기꾼이다.』<진세근기자>
◇정보사부지 매각 사기사건 일지
▲91년 1월 김영호 안양군부대땅 사기미수(12월 2차사기미수)
▲10월 김인수·곽수열 등 사기모의,김영호·정건중 등 접촉
▲12·23 제일생명­정건중일당 1차약정서(정보사부지 3천평 평당 2천만원) 제일생명 2백70억원 예치→정덕현대리 2백70억원 인출
▲12월말 2차약정서(골프연습장 부지 3천평 평당 2천만원)
▲12.26 정덕현대리 2백70억원 반환.
▲92년 1월초 3차약정서(정보사부지·골프연습장중 택일,평당 2천2백만원)
▲1월초 4차약정서(계약당사자 윤성식에서 제일생명으로 변경) 제일생명 1백20억원 입금(원장도장 윤선식)
▲1.13 제일생명 1백억원 입금
▲1.17 제일생명 30억원입금
▲1.21 정명우·김인수­김영호 정보사부지 1만7천평 계약(대금 7백65억원,계약금 76억5천만원,3개월내 1만평 양도)
▲1.28 김영호,안양군부대땅 사기(49억5천만원)
▲1.31 제일생­정건중일당 1차 정식계약 체결(약속어음 발행교부 약속)
▲2.13 정덕현형제 2백30억원 인출 완료
▲2.17 제일생명 어음 4백30억원 발행
▲2∼4월 제일생명 약속어음 63장으로 분할 재교부
▲4.6 정영진 20억원 어음 회수
▲4.21 제일생명­성무건설 정보사부지 2차 정식계약
▲4.22 정건중·정영진 성무건설 설립
▲4.27 김영호 정보사령관명의 부대이전 합의각서 위조
▲5.30 제일생명 계약해지
▲6.8 국방부합조단 제보접수
▲6.10 김영호·원유순에 84억원 반환
▲6.11 김영호 홍콩도피
▲6.28 김영호 북경서 검거
▲7.2 제일생명 정건중일당 7명 고소
▲7.3 은감원 국민은행 특별검사착수
▲7.4 국민은행 정덕현대리 검거,검찰 제일생명 윤성식상무 고소인 조사
▲7.5 김영호 한국압송,정덕현대리 구속
▲7.6 검찰 수사착수
▲7.7 정명우 자수
▲7.8 정건중·정영진 자수,김영호 공문서위조혐의 구속
▲7.9 하영기사장 소환조사,박남규회장 병실에서 조사
▲7.10 정건중·정영진·정명우·윤성식사기 등 혐의로 구속
▲7.13 민주당 진상조사단 서울지검 방문,안양군부대땅 사기 확인
▲7.15 하영기사장 재소환,김인수 자수
▲7.20 김인수일당 성남땅 사기극 확인,임환종 자수,민영춘수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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