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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처는 낙하산 감사 손 못대"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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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공기업 감사들의 남미 외유 파문으로 공기업 정책의 근본적인 문제가 드러났다. 기획예산처가 주도하는 공기업 관리.감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기업 임원 자리를 '사유화'하는 정치권과 관료들의 사고방식을 바로잡지 않는 한 공기업 개혁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구호에 그친 공기업 '혁신'=올 들어 정부는 4월 1일부터 공공기관운영법(공공법)을 시행했다. 이를 계기로 공기업 개혁에 고삐를 당기겠다는 다짐도 했다. 공기업 민영화 정책을 중단한 현 정부가 공기업 혁신의 대안으로 내세운 것이 바로 공공법이다.

공공법은 첫 걸음부터 삐걱거렸다. 예산처는 지난달 한국전력 등 24개 기관을 공기업으로, 소비자보호원 등 78개 기관을 준정부기관으로, 196개 기관을 기타 공공기관으로 지정했다. 이 과정에서 장병완 예산처 장관은 KBS의 공공기관 지정 여부를 놓고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이다 결국 KBS를 제외했다. 지나치게 높은 금융 공기업 임금 문제에도 소극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 관(官)이 공(公)을 다스리는 한계=예산처가 공기업을 감독.관리하기는 힘에 부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부는 공공법으로 임원 추천위 등을 통해 낙하산 인사 소지를 없앴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대통령이 직접 "낙하산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고 언급했다. 최고위층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예산처가 낙하산 인사를 수술하기는 어렵다는 게 관료사회의 시각이다.

실제로 이번에 문제가 된 공기업 감사들도 과거 정부투자기본관리법에 따라 '예산처 장관과 재경부 장관의 협의→정부투자기관 운영위 검증→대통령 임명'의 다단계 과정을 거쳐 뽑힌 사람이 대부분이다. 새로운 공공법은 '임원 추천위→공공기관 운영위→예산처 장관 제청→대통령 임명'으로 일부 임명 과정만 손질했을 뿐 근본적인 구도가 변한 게 아니다. 참여연대 이재근 행정감시팀장은 "과거 감사 임명 때도 예산처가 관여했지만 낙하산 인사가 없었느냐"며 "정부투자 운영위가 하던 것을 공공기관 운영위가 한다고 뭐가 달라지겠느냐"고 반문했다.

◆ 소극적인 예산처=현 정부 들어 실세 부서로 떠오른 예산처는 유난히 코드 맞추기에 신경을 썼다. 예산처는 이번 단체 외유도 미리 보고받은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나 예산처는 여전히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예산처의 고위 관계자는 "자율적으로 간 여행에 대해 예산처가 확인해 답할 의무는 없다"며 선을 그었다. 예산처는 그동안 기를 쓰고 공공법을 제정해 공기업.공공기관의 감독권을 따냈다. 그렇게 독점한 감독권인데도 이번 파문이 불거진 뒤에는 감독권을 행사하는 데 지나치게 신중한 모습이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공식 논평에서 "사실상 혁신감사포럼을 주관한 기획예산처가 모르쇠로 발뺌하고 있는 만큼 예산처가 묵인.방조했다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며 "기획예산처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밝혔다. 감사원은 이날 예산처의 관리.감독에 대해 감사 방침을 시사했다.

윤창희 기자

네티즌 "땀 흘려 일해본 적 없는 사람들"
정치권 "혁신 외쳐온 노 정권의 허상"
시민단체 고발 추진, 감사 해임 요구도

공기업 및 공공기관 감사 21명의 '이과수폭포 외유'(사진(左).본지 5월 15일자 1면)에 대한 비난이 이틀째 빗발쳤다. 16일에도 네티즌들은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격"이라며 분노를 터뜨렸다. 시민단체들은 감사들을 사법 당국에 고발하겠다고 나섰으며 정치권은 관련 상임위를 열어 기획예산처의 직무유기를 파헤치겠다고 밝혔다.

◆ "제정신들이냐"=이날 조인스(www.joins.com) 등 인터넷 사이트들에는 방만한 공기업 경영을 질타하는 글이 하루 종일 쏟아졌다. 특히 파문을 일으킨 상당수가 지난 대통령선거 당시 노무현 캠프에서 일한 정치권 인사이거나 시민단체 출신이라는 사실에 네티즌들의 분노가 집중됐다.

네티즌 박창주씨는 "(감사들의) 주요 경력이란 걸 보니까 평생 땀 흘려 일해 본 적이 없는 자들이 대부분인 것 같다"며 "수억원의 연봉을 받으면서 먼 곳까지 놀러가는 걸 보니 일할 의욕이 안 난다"고 개탄했다. 한 네티즌(rlatn101)은 "하루에 10시간씩 공기업 입사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뒤 "누구는 줄 잘 서서 감사가 되고, 방만 경영 감독하랬더니 이과수로 놀러가는 게 제정신이냐"고 비난했다. 또 다른 네티즌(hdff088)도 "권위주의 타파 등 현 정부의 성과도 적지 않지만, 하나도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더 나빠진 게 공기업 낙하산 문제"라며 "대통령이 국민 앞에 나서 해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를 방조한 예산처에 대한 질타도 이어졌다. 자신을 공무원이라고 소개한 한 네티즌(personna)은 "예산처가 공기업 감독한다고 최근 조직을 대폭 늘려 공공혁신본부가 50명에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며 "이번 사태를 막지 못한 예산처 장병완 장관은 즉각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검찰 고발 및 감사 청구 움직임=참여연대는 이날 검찰 고발과 감사원 감사 청구를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또 성명을 통해 "이번 일은 공공기관 감사를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빚을 진 사람들에게 '감사(感謝)'의 차원에서 감사를 임명하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도 "공기업 감사들의 업무 수행에 대한 전면 실태조사를 벌일 것"을 정부에 요구했다.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연맹도 성명을 내고 "예산처는 공공기관 운영위를 열어 이들 감사의 해임을 의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행정개혁시민연대는 다음달 '공기업 및 정부 산하단체 감시단'을 발족시켜 입법청원운동에 들어가기로 했다. 활빈단 역시 이과수 외유 감사들을 검찰에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 "임기 말 누수현상"=정치권은 청와대의 공기업 인사 관행과 임기 말 국정 운영 능력을 맹공하고 나섰다.

한나라당의 김형오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번 사태를 공직 기강 해이로 규정하면서 "상임위를 열어 감독기관인 기획예산처 장관을 상대로 직무 유기를 철저히 따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기관의 국고.혈세 낭비 사항을 철저히 파헤쳐 6월 국회의 중점 과제로 삼겠다"고 덧붙였다.

중도개혁통합신당의 양형일 대변인은 "이과수 외유는 참여정부의 임기 말 국정 관리에서 누수 현상을 보여 주는 사례"라고 비난했다. 그는 "이번 사태의 재발을 막으려면 대통령은 임기 말 국정을 철저하게 챙기는 데 전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채병건.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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