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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계자 만들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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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노 후보=(경선)끝까지 갈 겁니까?

▶한 후보=그래요. 난 도중하차하지 않을 거요.

▶노 후보=(잠시 머뭇대다)지금까지도 머슴으로 살아왔는데 그럼 앞으로도 나더러 동교동 머슴 살란 얘깁니까?

이 말을 남기고 노 후보는 자리를 떴다. 민주당에서는 변방 취급을 당한 부산 출신으로 겪어온 심적 갈등과 서운함이 '머슴'이란 말로 표현된 것이다. 한 전직 의원은 "영남 출신인 노 대통령은 호남세력이 주도하는 당에 들어와 주류로 자리하지 못했다는 피해의식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PK(부산.경남)를 기반으로 한 YS(김영삼 전 대통령)가 이끌었던 통일민주당에서 정치를 시작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정치활동의 대부분은 DJ 진영에서 꽃피웠다. 해양수산부 장관을 거쳤고, 대통령 후보가 된 것이 대표적 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노 대통령이 DJ 진영에서 대접만 받은 것은 아니다. 그는 줄기차게 호남 헤게모니에 저항했고 비주류의 길을 걸었다.

마침내 정권을 잡은 노 대통령은 엄청난 저항과 반발을 무릅쓰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우여곡절 끝에 '친노'라는 자파 세력의 둥지를 만든 셈이다. '머슴'에서 벗어나 명실상부한 주인이 된 것이다. 그가 대북 송금 특검을 결정한 것이나 한나라당을 향해 대연정 제의를 한 것은 DJ 진영에 충격을 주었다.

노무현 노선은 어찌 보면 YS와 DJ를 극복한 새로운 모델일 수 있다. 정치적 색깔의 측면에서는 YS를 벗어나고, 지역적으로는 탈호남이라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최근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1987년 통일민주당의 분열과 90년 3당 합당으로 일그러져버린 한국의 정당구도, 그 이후 지금껏 한마음으로 매달려 왔던 지역주의 극복과 국민통합, 이것이 '정치인 노무현'의 간절한 소망이었다. 소망은 2003년 11월 열린우리당 창당으로 나타났다"고 적었다.

DJ와 노 대통령의 관계는 두 가지 측면이 공존한다. 한나라당의 집권을 저지해야 한다는 부분에서는 동업자다. 그러나 향후 방향을 놓고는 이해가 상충한다. 경쟁자 관계다. 갈등은 17대 대선을 앞두고 다시 불붙고 있다. 범여권 일각에선 공공연히 "12월 대선을 앞둔 반(反)한나라당 대표 주자를 결정하는 작업은 결국 DJ와 노 대통령 간의 대리전 양상으로 진행될 것"이란 말이 나돌고 있다. 두 사람이 다 자신이 선호하는 후보를 밀거나 정치적 입김을 불어넣으려 할 것이고 이 같은 주도권 다툼에서 결국 충돌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 같은 점에서 "호남.충청 연합론은 환상"이라고 한 청와대의 공격이나, "남북 정상회담을 실현하지 못하고 물러나면 노 대통령은 남북 문제에서 많은 점수를 잃을 것"이라는 DJ의 발언은 전초전의 성격이 있다.

호남에서의 영향력과 진보 진영의 법통(法統)을 이어받은 '명가(名家)' 출신이라고 믿는 DJ와, 노력 끝에 '머슴'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문'을 세웠다고 믿는 노 대통령. 후계자 만들기 경쟁에서 과연 두 사람 가운데 누가 마지막에 웃게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자신들이 마음만 먹으면 특정 후보를 만들 수도 있고 반대로 물 먹일 수도 있다는 오만이 깔려 있다면 양측의 대립은 국민의 외면을 받을 것이란 점이다. 그 다음에 기다리는 것은 "밥그릇 싸움 끝에 정권을 상대 진영에 헌납하고 말았다"는 지지자들의 비난일 것이다.

이정민 정치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