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미련으로9권 째 난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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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성취감보다는 허탈하고 착잡한 기분만 듭니다. 내 청춘의 고백록이면서 우리 사회에 대한 정리인 이 작품에서 전체에 맞선 한 자유 혼을 희생시킬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작가 고원정씨(36)가 전작장편『빙벽』전9권을 완간 했다(현암사간).89년7월 제1부「우상의 땅」3권을 선보인 이래 꼭 3년 만에 원고지 1만2천장 분량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 것이다.
『빙벽』은 60년대 초 정치적 격동기와군대사회라는 「금기된 보편공간」을 정공법으로 파고들며 전체주의 속에서 진정한, 용감한 자유의 의미를 캐고있다.80년6월부터 81년7월까지 1년여의 짧은 기간을 전9권에 담고있는『빙벽』은 한 전방부대를 무대로 군의 본질인 전체주의적 구조 또는 사고에 반항하는 현 칠기소위와 내면적으로 그럭저럭 소화해내는 사병 박기섭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들의 성장과정·가족사 등을 통해 시공을 확장해가며 궁극적으로 인간의 사회제도, 역사 속에서의 개인적 자유를 묻고있다.
『이 작품을 쓰기 시작했던 89년도엔 사회에 민주화가 거세게 일고 있었습니다. 그땐 저도 얼마후면 이전과는 다른 좋은 사회가 열리리라 기대했는데 변한 것은 별로 없습니다. 한 장교의 어리석은 죽음을 전체주의를 위해 신화화시킨 군 내부의 조작극을 캐려다 좌절, 자살해 역시 신화화되게 주인공을 몰고 간 우리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우리사회에서 전체주의적 사고는 여전히 넘기 힘든「빙벽」으로 남아 있습니다.』 지난해 7윌 8권까지 펴냈던 고씨는 마지막 1권을 위해1년을 소비해야 했다.
주인공을 전체주의에 희생시킬 수밖에 없게 한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민주화에 대한 미련 때문이었다. 전9권에 짧은 기간을 다루면서도 박진감 넘치는 문체와 발빠른 이야기 전환, 특히 전체주의, 혹은 권력의 핵인 군 내부를 과감히 파헤침으로써 이 작품은 완간도 되기 전에 이미 30만 권 이상이 팔려나갔다.
8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거인의 잠』이 당선돼 문단에 나온 고씨는 일련의 정치적 알레고리 소설로 80년대 소설 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다 최근 들어서는 『최후의 계엄령』『대권』등을 통해 리얼한 정치소설로 파고들고 있다.
『독자들의 욕구를 충분히 수용, 작가는 열심히 공부하며 격이있는 읽을 거리를 끊임없이 써내야 한다』는 고씨는 현재4개 신문·잡지에 동시에 장편을 연재하는 최다 산 프로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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