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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이라크 파병, 우리 몫이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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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번 이라크전의 작전명은 '이라크 해방작전'이다.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의 체포는 이 해방작전의 핵심 부분을 수행한 것이다. 이제 독재자가 사라진 이라크는 평화와 자유의 여정에 오를 것이다. 그러나 이라크의 평화와 자유의 미래에는 아직도 상당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어쩌면 진정한 '이라크 해방 작전'은 지금부터다.

2000년 6월 15일 남북 정상회담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보는 우리의 시각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정상회담 자체가 김정일의 태도 변화를 가져다 준 것은 아니다. 남북 정상회담 자체가 한반도의 전쟁 가능성 자체를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 것처럼, 후세인의 체포가 바로 이라크의 자유와 평화 자체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후세인의 체포는 분명 긍정적 조짐이다. 이 때문에 이라크 주민뿐만 아니라, 미국의 이라크 전쟁을 반대하던 프랑스나 러시아까지도 일제히 환영의사를 밝히고 나선 것이다.

우선 미국의 이라크 재건작업이 상당히 유리하게 됐다. 가장 먼저 미국 내의 이라크전쟁에 대한 여론에 크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특히 이라크전쟁이 내년 대선의 이슈로 부각돼 있는 만큼, 당연히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는 큰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이라크 재건을 위해 미국이 제반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는 여론의 상승이 기대되며 안정된 이라크가 출범하기 전에 미군을 철수시켜야 한다는 압력은 줄어들 것이다. 또한 후세인의 체포는 이라크 주둔 미군 장병들의 사기를 높여 작전 수행 능력을 향상시킬 것이다.

그리고 1차 걸프전 후 미국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후세인에 의해 30만명이 학살당한 시아파계 주민과 이라크 국민은 후세인 복귀의 공포에서 일단 해방돼 미국에 대해 좀더 협조적인 태도를 취할 것이다. 후세인의 체포는 그의 재기 가능성에 대해 종지부를 찍은 것이며 후세인 잔당들의 세력 또한 위축될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이라크 내의 테러가 금명간에 종식될 것이라는 기대는 너무 성급하다. 지금 이라크에서 테러를 자행하는 세력들은 알카에다, 팔레스타인이나 레바논 등지를 근거지로 하는 이슬람 과격파와 급진적 아랍민족주의 세력, 이란의 지원을 받아온 시아파 무장투쟁 조직, 자생적 시아파 과격 세력 등 후세인과는 직접 관련 없는 다양한 집단들이다. 이들은 후세인의 체포와 관계 없이 미국 주도의 이라크 재건 활동을 계속 방해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후세인의 체포는 '포스트 후세인'시대를 여는 데 있어 상징성을 갖는 사건임에는 분명하나, 이라크전의 완전한 종결이나 테러전의 종식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둘러싼 국제적 논란과 갈등도 당분간은 계속될 것이다. 프랑스 등의 반전국들은 후세인 체포를 계기로 '조속한 주권이양'과 '유엔의 주도성'이라는 기존의 주장을 되풀이하면서 미국이 한시라도 빨리 이라크에서 손을 떼고 떠날 것을 종용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은 이라크 재건 사업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테러가 지속되는 한 미국은 시련과 함께 동시에 그들이 이라크에 존재하는 이유를 확실히 확보할 것이다. 후세인 체포가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 지속 의지에는 조금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

후세인 체포를 계기로 한국도 이제는 소아병적인 파병 논쟁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우리의 파병논의는 '이라크가 안전하면 파병'하고, '그렇지 않으면 파병해서는 안 된다'는 기묘한 논쟁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혼란스러운 곳에 치안을 확보하기 위해 군대를 보내는 것이지, 만약 이라크가 평화롭고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왜 군대를 보내겠는가. 이런 파병반대론은 후세인이 체포되자 "미국이 후세인 제거를 완료한 만큼 더 이상 테러와의 전쟁을 계속할 명분이 없다"거나 "이라크 국민에게 주권을 돌려주고 (이미 파병된 한국 군대도) 철수해야 한다"는 등으로 변모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논쟁은 집어치우고 세계 평화 구축에 능동적인 참여자가 되고 이라크 국민이 안전하고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돕는 성숙한 국가로서의 역할을 할 때다. 이제 우리 몫을 하러 이라크로 향해야 할 것이다.

송영선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