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향기] 엄마 나, 이혼할까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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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아이 엄마가 된 지 4년이다. 첫아이 낳고 밤잠 설치며 젖 먹이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둘째 녀석 두 돌이 내일모레다.

결혼 전엔 나도 잘 나가는 학원강사였는데 결혼 후 전업주부로 6년을 살고 있다. 천성이 쾌활하고 활동적인지라 집에서 살림하며 애만 키운다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스트레스 강도는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갔고, 결국 그 스트레스는 아이들에게로 돌아갔다.

며칠 전 아이 혼내는 걸 보신 친정어머니가 "아이를 왜 때리니. 내가 널 때리며 키웠니? 네가 낳았다고 네 맘대로 하는 거니?"라며 나무라셨다. 순간 뜨끔했다. 어린 시절 어머니한테 맞은 기억이 없었다. 언니들과 싸우거나 하면 아버지가 매를 들곤 하셨지만 그마저도 드물었다.

'그렇구나. 근데 나는 아이가 내 말을 안 듣고 떼를 쓴다고 혼을 내고 심지어 손찌검까지 했으니…'.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남편이 도와주지 않는다고, 시어머니가 스트레스 준다고 나 스스로 홧병을 만들었을지도 모르는데 그걸 아이에게 풀고 있었다.

얼마 전의 일이다. 남편과 경제적인 문제로 크게 다투었다. 이혼까지 생각했다. 여기저기 알아보고 다녔다. 합의이혼은 어떻게 하는지, 양육권은 어떻게 되는지…. 왜 사람들이 이혼사유로 '성격 차이'를 드는지 알았다. 딱 그거 하나였다. 남편과 나는 성격이 너무 달랐다. 그러기에 그는 내 행동을 이해 못했고, 그의 행동을 나로선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뭐하나 공감대가 없었다.

결론은 극단적으로 치달았다. 이혼! 이혼! 이혼! 그때 부모님 생각이 났다. 내 부모님은 이럴 때가 없었을까? 아이들을 두고 뛰쳐나가고 싶지 않았을까? 이혼하는 사람들… 남편(혹은 아내)을 미워하는 마음이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보다 더 컸겠지. 그랬기에 그런 결정을 할 수 있었을 거다. 우리 둘만의 문제라면 홀가분할텐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우리 사이엔 아이들이란 존재가 있었다.

난 갈등에 휩싸였다. 남편과 화해하고자 하는 어떤 노력도 하기 싫었지만 아이들 때문에 냉전을 끝내야 했다. 남편과 대화를 단절한 지 3주가 다 돼 나는 진지하게 이야기를 꺼냈다. 남편은 자신도 이혼을 생각했다고 고백했다. 모처럼 우리의 생각이 일치(?)했던 것이다.

밤늦도록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동안 너무 힘들었노라고, 당신이 나를 이해 못하기에 더 힘들었노라고 솔직하게 털어 놓았다. 비로소 마음이 열렸다. 늘 논리정연한 대답만을 강요하던 그도 그날만은 내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었다. 무뚝뚝한 그에게서 많은 얘길 들었다.

그랬었구나… 그도 가장으로서,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자식으로서 너무 힘든 위치에 서 있었다. 내가 그동안 무심히 지나쳐 왔던 거다.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혼을 하면 가장 큰 피해자는 아이들이라는 말을 했더니 그도 공감했다. 그렇게 우리 둘의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조급증에 걸린 사람처럼 살아왔지만 이젠 기다릴 줄 아는 법을 익혀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삶에 있어 누군가는 기다리고 참아주어야 한다. 그게 왜 '나'여야만 하는가보다는'나'면 좀 어떤가라는 생각을 가지면 되는 것을 왜 몰랐을까? 부모가 된다는 것, 이제 좀 알 것 같다. 우리 부모님이 존경스럽다. 오늘은 양가 부모님들께 안부전화라도 드려야겠다.

노윤정(경기도 군포시 당동.3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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