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정보사 땅 사기 배후 있나 없나/가상 시나리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정보사부지매각 사기사건은 많은 사람들이 의심하는 대로 「배후가 있는 비밀거래 미수극」인가,아니면 그야말로 「봉이 김선달식 단순사기극」인가. 검찰수사가 막바지로 들어섰으나 사건의 진상은 여전히 안개속이다. 어느 쪽으로 풀어야 더 무리가 없는지 가상 시나리오로 정리해 본다.<사회부 특별취재팀>
◎단순사기로 밖에 볼 수 없는 이유/곽 일당­김영호 합작… 정건중도 속아/윤 상무는 커미션 30억원에 말려든 것
정보사부지 사기사건은 배후에 대해 끊임없이 의혹이 제기돼 왔지만 군부지 전문사기꾼 곽수열·김인수씨 일당이 전 합참 자료과장 김영호씨를 포섭,배후없이 만들어낸 단순사기일 가능성이 높다.
제일생명은 물론 중간브로커 역할을 한 성무건설 정건중씨 일당도 계약이 정말로 성사될 것으로 믿었던 정황증거가 곳곳에서 발견된다.
지난해 10월께 곽씨 일당은 정보사 부지를 미끼로 사기행각을 벌일 것을 공모한뒤 마땅한 「얼굴마담」을 물색,임환종씨를 통해 김씨에게 접근한다. 김씨가 처음부터 사기극임을 알았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어쨌든 김씨는 이들에게 가담,지난해 12월 곽씨를 통해 만난 정씨와 정보사 부지 1만7천평을 7백65억원에 팔기로 약속한다.
현직 고위장성과 동기인 육사 18기에 전 합참 군사시설정책실장을 지낸 김씨가 나섰기에 설득력있게 들렸다.
정씨측은 1월21일 매매계약서를 작성하고 김씨에게 사례비와 계약금 81억5천만원,곽씨에게 30억원,김인수씨에게 25억원을 지불했다.
정씨측은 매매가 성사될 것으로 굳게 믿고 1만7천여평중 3천여평은 제3자에게 매각해 자금을 마련하고 2천여평은 사옥부지로,나머지 1만2천여평에는 대규모 아파트단지를 조성하는 마스터플랜도 작성한다. 정씨측은 자금마련을 위해 3천평을 살 대상을 구하던중 사옥부지를 찾던 제일생명 윤성식상무와 연결돼 지난해 12월23일 평당 2천만원에 비밀약정을 맺는다.
내용은 『은행에 예치금 2백30억원을 예치시키고 잔금 4백30억원을 견질어음으로 지급하며 한달이 지나도록 계약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콜금리를 물어준다』는 것이었다. 통장과 도장을 자기가 갖고 있는 이상 은행에 맡긴 돈을 사기당하리라고 상상치 못한데다 어음 역시 유통시키지 않겠다는 확약을 받은 윤 상무는 『일이 잘못되더라도 손해날 것이 없다』고 판단했다.
검찰에 의해 밝혀진대로 윤 상무는 정씨측으로부터 커미션 30억원을 확약받은데다 8억원을 차용,어떻게든 일을 성사시켜야 한다는 초조함으로 판단력이 흐려졌다.
이것이 『부동산에 누구보다 밝은 제일생명이 든든한 배후세력의 보장없이 위험한 거래에 뛰어들리 있겠는가』라는 세간의 의혹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다.
김씨는 1월21일 위조한 국방부장관 직인을 사용,가짜매매계약서를 만들어 정씨측을 믿도록 했으며,물론 정씨도 윤 상무에게 이 계약서를 보여주고 5월9일에는 김씨를 만나도록 해 윤 상무를 안심시켰다. 그러나 정씨 일당은 사업자금을 우선 윤 상무가 예치해둔 돈에서 끌어다 쓰고 나중에 메우기로 미리 작성,올 1∼2월 사이 윤 상무 몰래 정덕현대리를 시켜 2백30억원을 빼내 사채시장에 돌리고 사업도 키워갔다.
그후 곽씨 일당은 예정대로 55억원을 챙겨 달아나고 뒤늦게 사기당한 것을 알게 된 제일생명측은 지난 2일 정씨 일당과 곽씨를 검·경에 고발했다.
정씨 일당으로서는 예치금을 빼돌리기는 했으나 제일생명을 속이려는 의도는 없었기 때문에 자신들이 사기범으로 몰리자 지난 8일 자수했음이 분명하다.
김씨도 신변에 위험을 느끼자 지난달 11일 홍콩으로 도피하기 직전 사건 무마를 위해 자신이 받은 81억여원을 정씨측에 돌려준 것이다.
무엇보다 실제로 어떤 「배후」가 정치자금이나 사례를 챙기려 했을 경우 이렇게 엉성하게 했겠느냐는 의심을 낳는다.
정말 「배후」가 있고 정치자금조성같은 목적이 있었다면 민자당 연수원 매각에서 보듯 직접 거래쪽이 훨씬 가능성이 높다고 보아야 한다.
◎배후가 있어야만 설명되는 부분/실력자가 뒤에서 매매 과정 조종하다 막바지 군·정계서 제동… 발뺏을 가능성
이 사건은 배후를 가정하지 않으면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다. 정계나 군의 고위층으로 추정되는 배후 A(이 배후는 여럿일 가능성도 있다)는 정보사 매각계획을 세우고 매매과정에서 생길 막대한 비자금을 챙길 방법을 강구했다. 세상에 알려질 경우 잡음이 일것이 뻔하기 때문에 A는 합참소속 2급 군무원으로 현역군인이 아닌데다 지난해 8월까지 군사부지 매매 등을 담당하는 군사시설정책실장으로 근무해 토지브로커들과도 안면이 있는 김영호씨(52)를 선택했다. A는 지난해 중반께(추정) 김씨에게 이같은 구상을 알린뒤 자신의 신분을 노출시키지 말고 상대방을 물색하도록 지시했다.
이에 따라 김시는 평소 군부대부지 불하에 적극 개입해왔고 배후에 막강한 인물들이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던 곽수열·김인수씨 등과 접촉한다.
김씨는 곽씨 등을 통해 만나게 된 정건중씨 등과 지난해말께부터 구체적인 계획을 짰다.
김씨는 배후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은채 『정보사 부지중 1만7천평 정도가 불하될 예정인데 적당한 기업을 찾아달라』며 수의계약이므로 비밀을 지켜줄 것을 요구했다.
정씨 등은 매매를 성사시킬 경우 엄청난 중개수익은 물론 자신들도 정보사 부지일부를 구입해 더 큰 사업(조합아파트·성무건설사옥건립)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적극 나선다.
이 과정에서 친해진 이들은 김씨의 정보력과 정씨 등의 수완을 합해 안양의 군부대부지를 사서 되파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었다.
정씨 등은 제일생명측의 신뢰를 얻고 있던 박삼화씨를 통해 제일생명 윤성식상무와 접촉했고 사옥부지가 시급한데다 비자금조성이 필요했던 제일생명도 쉽게 응했다.
제일생명의 하영기사장·박남규그룹회장 등이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배후세력에게 확인해 부지불하가 사실임을 확인한다.
제일생명은 2백30억원을 현금으로 입금하고 나머지 4백30억원은 어음을 발행,부지를 넘겨받기 전에 미리 돈을 모두 지급한다.
정씨 등은 이 돈중 일부를 김씨에게 「계약금」과 사례비로 81억5천만원을 지불하고 나머지는 거래가 끝나는 시점에 주기로 했다.
사건은 거래가 막바지에 달하던 4∼5월 사이 부지매매자체가 백지화되면서 터진다.
이유는 정확하지 않지만 부지매매 추진이 구체적으로 알려지면서 정계나 군에서 제동을 걸고 나왔을 가능성도 있다.
대선을 앞두고 엉뚱한 수의계약을 했다가는 제2의 수서사태가 터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을 수 있다. 계약이 백지화되자 김씨는 자신이 받은 「계약금」을 이자 5억원까지 포함해 모두 되돌려주고 일단 홍콩으로 도피했다.
중개인 정씨 등은 김씨가 달아난뒤 제일생명을 무마하면서 거래를 성사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곽수열씨 등과 접촉하며 고심한다.
제일생명은 거래가 틀어진 것이 확실하자 돈을 돌려받기 위해 정씨 일당을 뒤늦게 고소했다.
그러나 비자금조성과 배후로부터 확실한 언질을 받은 사실을 숨기기 위해 하 사장 등이 처음부터 관여한 것을 숨겼다.
김씨는 지난달 28일 중국에서 붙잡혀 5일 압송됐지만 어차피 사건화돼 처벌받을 것이 분명한데다 자신은 돈을 모두 되돌려준 점이 참작될 것으로 보고 배후에 대해서는 함구한다.
정씨 일당은 일단 도피했지만 김영호씨가 압송되자 자칫 자신들이 이 사건의 주범으로 몰려 죄를 모두 뒤집어 쓸 것을 우려,서둘러 자수했다.
제일생명측으로부터 받은 돈의 대부분은 정씨 일당이 수의계약에 따른 돈세탁을 하기 위해 사채시장 등에 맡겨둔 상태고 검찰은 돈이 아직 정씨 등의 수중에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배후」가 없다고 결론짓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