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코지 당선에 "나 돌아갈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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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폭탄'을 피해 조국을 떠났던 프랑스 부자들이 하나 둘씩 돌아올 채비를 하고 있다. 세금을 대폭 낮추겠다고 공약한 니콜라 사르코지가 대통령에 당선됐기 때문이다. 16일 그의 공식 취임을 앞두고 프랑스에서는 높은 세금과 세금 도피족들의 귀국을 놓고 뜨거운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 "프랑스로 돌아가겠다"=대통령 선거전 초반부터 사르코지를 지지한다고 밝힌 프랑스 국민가수 조니 알리데는 대선 이틀 뒤인 8일 귀국 의사를 밝혔다. 그는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사르코지가 제시한 정책은 나처럼 프랑스를 떠난 사람들을 다시 돌아오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말 "프랑스의 세금이 지긋지긋해서 못 살겠다"며 스위스로 이사했다.

프랑스 재계의 차기 리더로 주목받다 1990년대 말 벨기에로 떠난 BO그룹 대표 드니 패르(44)도 돌아올 뜻을 분명히 했다. 그는 일간 파리지앵과의 인터뷰에서 "사르코지의 당선으로 소득세.부유세가 소득의 50%로 낮아지게 됐다"며 "조만간 프랑스로 돌아가겠다"고 밝혔다. 그는 "90년대 말에는 부유세.소득세 등 내야 할 세금이 연봉의 세 배에 달해 세금을 내기 위해 재산을 처분해야 했을 정도였다"며 "그때는 정말 프랑스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세금 때문에 프랑스를 떠난 유명 인사 중에는 영화배우 알랭 들롱과 가수 파트리샤 카스도 있다. 미용실 체인을 경영하는 장 루이 다비드도 스위스로 떠났다. 가전기기 판매업체인 다티를 창업한 베르나르 다티 등은 벨기에로 이주했다.

프랑스 정부는 올 초부터 소득세.부유세 등 세금이 소득의 60%가 넘지 않도록 하는 세금 상한제를 도입했다. 사르코지는 이 상한선을 더욱 낮추겠다고 공약했다. 그는 준조세 성격의 일반사회보장기여금(CSG)까지 포함한 세금 총액이 소득의 50%를 넘지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부유세 과세 대상자가 중소기업에 투자할 경우 부유세 일부를 공제하겠으며, 상속세도 완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프랑스에서는 부자일수록 많은 세금을 내도록 돼 있다. 1581만 유로(약 197억원) 이상의 재산을 가진 사람은 연간 21만1350유로(2억6400만원) 이상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 이런 세금 폭탄에 질린 부자들은 연간 수백 명씩 프랑스를 떠났다.

◆ 세금 도피족 귀국 놓고 논란도=세금을 피해 나라를 등졌던 이들의 귀향 움직임에 대한 따가운 시선도 적지 않다. 인터넷 사이트에는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세금을 안 내기 위해 조국을 등졌던 사람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글이 많이 올라오고 있다. "조국은 마음대로 버리고 제멋대로 되찾는 게 아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CGT 등 노조단체도 "국민의 의무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라를 떠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반면 "사유 재산을 국유화하는 세금정책이 잘못된 것"이라는 반대논리도 만만치 않다. 세금 정책은 다음달 열릴 총선에서도 주요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 사회당은 사르코지의 공약에 반대하는 것은 물론 고소득자에 대한 세금감면 제도를 모두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또 월급 액수에 상관없이 7.5%를 일률적으로 부과하고 있는 일반사회보장기여금도 누진세를 도입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파리=전진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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