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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행방 왜 안밝혀지나/473억이 배후규명 「마지막 열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검찰 “현재 추적된 돈은 60∼70%”/사주·사장이 모른 건 이해안돼
정보사부지 매각사기사건의 「배후」 유모는 밝혀질 것인가.
사건 관계자들의 진술이 계속 엇갈리고 있는 상황에서 자금의 행방이 의혹을 풀어주는 「마지막 열쇠」가 되고 있다.
자금의 소재만 파악되면 배후는 물론 토지사기사건의 전모도 확연히 모습을 드러낼 것이기 때문이다.
검찰은 10일 이번 사건의 피해자인 제일생명 윤성식상무가 사기단과 공모해 매매대금 2중약정서를 만들어 60억원의 불법자금을 마련,이중 30억원은 회사 비자금으로 확보하고 나머지 30억원은 자신이 착복하려했다는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검찰은 또 윤 상무가 8억원을 정영진씨에게 빌렸고 이를 정씨 일당이 제일생명에 지급해야할 예치금 이자와 상계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여기에서 「비자금」 「착복」이라는 두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선 비자금이 계획됐다는 것은 이제까지의 진술과는 달리 제일생명 하영기사장과 사주인 조양상선 박남규회장이 정보사부지 매입교섭사실을 사전에 알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왜냐하면 계약금이 증액된 12월23일자 매매약정서에는 분명히 정보사부지가 매매대상으로 기록돼 있으며 이 시점은 하 사장 자신의 진술을 통해 확인된 윤 상무의 보고시기와도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 사장은 12월23일 이전에 윤 상무로부터 정보사부지 매입 사실을 보고받았으며 이때 비자금에 관해서도 알게됐을 것이라는 얘기다.
「착복」은 윤 상무가 사기단에 약점을 잡히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윤 상무가 무력하게 사기단에 끌려다니다 어쩔 수 없는 시점에 이르러서야 사기단을 검찰에 고발해야 했던 사정을 이해하는 단서가 될 수 있다.
결국 검찰의 수사결과만 놓고 보면 이번 사기사건은 검은 돈에 눈먼 기업과 개인이 무리하게 군부대 부지매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절대 안전하다고 믿고 은행에 계약금을 예치했다가 사기단의 일원인 은행대리에게 돈을 떼인 단순사기사건으로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박 회장을 비롯한 회사 경영진이 겨우 30억원의 비자금 마련에 눈이 어두워 일개 군무원에게 사운이 걸린 사옥부지 매입을 의뢰했겠느냐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더구나 일개 피고용인에 불과한 윤 상무가 비자금 규모를 능가하는 돈을 횡령하려했다는 점도 석연치 않다. 특히 이 사실을 최고 경영자가 끝까지 몰랐다는 것은 기업생리상 무리다.
재테크 전문집단인 보험회사가 어설픈 약정서 하나만으로도 거래가 이뤄질 것이라고 신뢰할 수 있었다면 「확실한 배후세력」이 있다고 보아야 일반의 감각으로는 설득력을 갖는다.
검찰의 수사결과가 이처럼 의문 투성이라면 제일생명이 정보사부지 매입자금으로 내놓은 6백60억원중 회수된 어음을 제외한 4백73억원의 행방을 밝히는 길만이 이 사건의 배후를 가리는 유일한 카드로 남게 된 셈이다.
이 가운데 지금까지 관련자 조사·통장추적을 통해 지출이 확인된 1백14억원을 포함,대충 1백97억원의 행방은 가려졌으나 나머지 2백70여억원의 행방은 묘연하다.
검찰 관계자는 10일 『현재 자금추적은 60∼70%정도 이뤄진 상태』라고 말하면서도 『세세한 부분까지는 추적이 불가능할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검찰이 자금추적을 통해 배후에 대한 설득력있는 자료를 제시할 수 있을지 현재로서는 미지수다. 더구나 사기단의 자금을 쫓는 과정에서 무고한 사람이 배후로 몰릴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검찰이 자금추적과정에서 미진하거나 석연치않은 부분을 남긴다면 검찰의 최종수사결과를 믿을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란 점이다.<진세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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