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침몰 21시간 지나서야 대책본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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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해역에서 침몰한 제주 선적 화물선 ‘골든로즈’호의 실종 선원 가족들이 13일 선박 관리회사인 부산시 동구 초량동 부광해운 사무실에서 현지 소식을 전해 듣고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다.송봉근 기자

'구조선과 헬기는 오지 않았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은 컴컴한 파도가 골든로즈호의 선원들을 집어삼킬 때 한국 정부는 아무것도 모르고 시간만 보냈다.

특히 관계 부처들은 사고 사실을 확인한 뒤에도 제때 대처하지 못했다. 해경.외교통상부 등은 '인명이 걸린 사고에 늑장 대처했다'는 지적이 일자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도 보였다.

◆ 해경, 사고 접수 뒤 6시간 지나서 전파=해양경찰청은 사고 발생 뒤 10시간이 지난 12일 오후 1시58분쯤 사고 선박의 관리선사인 부산의 부광해운으로부터 사고 소식을 처음 접수했다. 해경은 그러나 사고를 접수하고도 6시간여가 지난 오후 8시11분부터 국가안보회의(NSC).외교통상부.국정원 등 28개 관련 기관에 사고 상황을 팩스로 전파했다. 이 때문에 사고경위 파악, 수색 협조 요청을 위한 외교적 노력은 사고 발생 후 20시간여가 흐른 후에야 본격화됐다.

해경의 보고 지연으로 침몰 사고에 대한 정부의 후속 대응이 늦어졌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에 대해 해경 측은 "당시로서는 사실 관계 확인과 중국 측에 적극적인 구조작업을 요청하는 일이 훨씬 급했다"고 해명했다. 해경은 부광해운 측으로부터 사고를 접수할 당시 동중국해에서 사고가 발생했다는 내용만 전달받았기 때문에 다른 기관에 사고를 전파할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해경은 사고 소식을 접하자 바로 중국 수색구조본부와 전화 통화로 사고 사실을 확인했으며 우리 경비함의 사고 현장 투입 가능성을 타진하는 등 1차적인 구조활동 독려에 나섰다고 밝혔다. 해경은 이날 오후 7시30분쯤 중국 측으로부터 '사고 해역에서 발견된 구명벌(침몰 시 팽창되는 보트식 탈출기)이 골든로즈호의 것으로 확인됐다'는 통보를 받고서야 유관기관들에 보낼 상황보고서를 작성, 40분 뒤인 오후 8시11분부터 팩스를 전송했다고 설명했다.

◆ 외교부 대응 지체=골든로즈호가 진성호와 충돌한 뒤 침몰한 사실을 한국 외교통상부가 파악한 것은 12일 오후 11시30분쯤이었다. 해경이 세 시간 전에 보낸 팩스를 뒤늦게 발견한 것이다. 사건 발생 19시간여 만이다. 중국과의 외교채널은 물론 정부 부처 간 협조에도 허점을 드러낸 셈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오후 8시21분 해경으로부터 1차로 팩스를 받았고, 9시1분 수정본을 받았으나 외교부 정보상황실에서 사실을 인지한 것은 오후 11시30분이었다"고 말했다.

해경이 팩스를 보내기 시작한 시간(8시11분)과 10분 차이가 나는 것은 해경에서 팩스를 보낸 기관이 28곳에 달하고 외교부 팩스도 다른 문서를 받고 있어서 이에 소요된 시간으로 보인다.

이 당국자는 팩스를 세 시간 이상 확인하지 않은 데 대해 "당직자가 방송 뉴스를 모니터링하느라 팩스 확인이 지체됐다"고 해명했다.

이때부터 외교부는 외교통신망을 이용해 중국으로부터 전문이 접수됐는지 확인 작업에 들어갔고 13일 0시40분쯤 재외국민보호과에 관련 사실을 통보했다. 영사국장과 보호과 직원 2명이 출근해 상황을 파악하고 사고 대책본부를 가동한 것은 사고가 발생한 지 무려 21시간여 만인 13일 오전 1시40분쯤이었다.

외교부는 13일 오전에야 조중표 외교부 제1차관이 닝푸쿠이(寧賦魁) 주한 중국대사에게 전화하는 등 고위 외교채널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촌각을 다투는 야간 긴급 상황에서 허비한 세 시간이 결과적으로 공식 대응을 지연시킨 것이다.

인천=정기환 기자, 서울=정용환 기자 <einbaum@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 <bksong@joongang.co.kr>

<실종자 명단>

▶한국인=허용윤(58.선장.부산시 동구 수정5동) 한송복(44.부산시 연제구 거제동) 최봉홍(51.경남 진해시 부흥동) 전해동(58.부산시 북구 만덕3동) 임규용(44.인천시 서구 가정동) 하지욱(20.울산시 남구 야음1동) 강계중(57.경남 진해시 청안동)

▶외국인=틴 아웅 에인(26.3항사.미얀마) 아웅 모에 타익(30.갑판장.미얀마) 양 아웅 묘(26.갑판수.미얀마) 모에 카이우 툰(40.갑판수.미얀마) 린 턱 아웅(24.갑판수.미얀마) 칫 테인(53.조기장.미얀마) 틴 스웨인(47.조기수.미얀마) 키아수 셰인 진(47.조기수.미얀마) 상바라 아룽 바투(27.조기수.인도네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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