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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르파, 집채만 한 '스노 샤워' 맞고 '수직 구간' 500m 추락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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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같이 가던 니마가 갑자기 사라졌다."

'2007 한국 로체샤르.로체 남벽 원정대'(중앙일보.KT 후원, 신한은행.㈜트렉스타 협찬)가 머무르고 있는 베이스캠프(해발 5220m)는 갑자기 부산해졌다.

상황은 이랬다. 오전 6시30분 캠프1을 출발한 겔젠과 니마, 도르지는 6050m 지점의 쿨루아르(눈 골짜기)를 차례로 트래버스(골짜기를 옆으로 건너는 것)하고 있었다. 겔젠이 앞서 건너고 니마가 등강기(Ascender)를 고정 로프에 연결하려던 찰나, 머리 위에서 집채만 한 '스노 샤워(Snow Shower.규모가 작은 눈사태)'가 떨어졌다. 니마는 미끄러지면서 500m 아래로 추락했다. 니마가 떨어진 구간은 수직에 가까운 절벽 구간 100m와 평균각도 70도가 넘는 구간 400m였다.

사고 소식을 듣자마자 베이스캠프에서 대기하던 전 대원들이 현장으로 달려갔다. 니마가 굴러 떨어진 곳은 바위투성이였다. 짙은 안개가 시야를 가렸다. 절벽 아래 500m를 굴러 떨어진 사고라 엄홍길(47) 원정대장도 니마의 생존에 회의적이었다. 오전 8시, 짙은 안개 사이로 무엇인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분명 사람의 손이었다. 원정대는 한 치 앞도 분간하기 힘든 안개 속으로 나아가면서 간절히 빌었다. '부디 니마의 손이기를'.

니마는 살아 있었다. 추락과 미끄러짐을 반복하던 니마는 거대한 크레바스(crevasse.빙하 또는 눈 쌓인 계곡에 있는 틈새) 직전에 기적적으로 멈췄던 것이다. 니마는 등반 루트까지 100여m를 기어 나와 구조 신호를 보냈다.

구조 당시 니마는 오른쪽 무릎의 탈골 증세와 왼손 등의 찰과상 외에 별다른 부상이 관찰되지 않았다. 새벽에 내린 눈이 완충작용을 했을 것이라는 짐작은 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이었다. 처음 니마를 본 이택건 대원은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울고 있었지만, 예상외로 몸 상태는 좋았다"고 말했다.

니마는 오후 1시30분쯤 베이스캠프로 옮겨졌다. 니마는 가장 가까운 마을인 추쿵을 거쳐 헬기를 이용해 카트만두 병원으로 이송됐다. 서른두 살의 니마에게는 5명의 자녀가 있다.

13일 현재, 등반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캠프2(6800m)를 구축한 지 13일이 지났지만 겨우 600m 정도 전진했을 뿐이다. 니마의 추락과 기적 같은 생환, 원정대원들은 지옥과 천당을 오간 이번 일을 액땜으로 생각하면서 반전의 계기가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로체=글.사진 김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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